식물패턴제작소 바스큘럼

무엇이든 그것의 원래 모습과 빛을 잃지 않도록 가꾸고 보존하는 것은 꽤 공이 들어가는 일이다. 하루가 다르게 트렌드가
바뀌는 도시에서 자연과 함께 그저 조용히 흘러가는 바스큘럼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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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바스큘럼의 창가를 책임지는 식물들. 빨간색 비닐 화분에서는 콩이 자라고 있다.
2 회화를 전공하고, 책 디자인을 하다가 식물패턴제작소를 연 김유인 대표.
3 멋스럽게 잘 마른 드라이플라워.


식물학자들이 식물채집을 위해 들고 다녔던 원통형 상자라는 뜻의 ‘바스큘럼’. 김유인씨가 2014년 7월 오픈한 공간으로, 직접 그린 식물패턴으로 패브릭 제품을 제작하는 공방이다. 대학에서 회화를 전공한 김유인씨가 가장 처음 관심을 가진 것은 사진. 필름 카메라의 느낌이 좋아 사진을 찍기 시작했지만 디지털카메라가 일반화되면서 사진에 흥미를 잃었다. 다음으로 관심을 가진 것은 책 디자인. “부업이야” 하면서도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책을 만들다가 음악을 하는 친오빠의 앨범 재킷 디자인을 한 것이 계기가 돼 에피톤프로젝트, 페퍼톤즈 등 꽤 많은 뮤지션들의 앨범 재킷 디자인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지금, 그녀는 일부러 찾아가야만 만날 수 있는 서교동 골목길에 ‘바스큘럼’이라는 이름의 작업실을 내고 식물패턴을 그리고, 이를 이용해 다양한 생활용품을 제작하는 일에 힘을 쏟고 있다. 이곳은 갤러리나 제품을 판매하는 상업공간은 아니고, 오로지 그녀의 작업실이자 공방이다.

작업실이 무척 조용하네요. 홍대 근처 같지 않아요 직원은 없고 분야별로 파트너가 따로 있어요. 바느질, 프린트 모두 혼자 할 수 있는 작업이 아니라서 파트너와 함께 하죠. 여기 놓인 긴 테이블이 프린트하는 날엔 프린트 테이블이 되고, 바느질하는 날엔 재단 책상이 돼요.

한 번에 많은 제품을 만들 순 없겠네요 원래 ‘적정 생산’을 목표로 해요. 개인 작업실치곤 이곳도 작은 편은 아니지만 작업실의 크기가 모든 것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사실이에요. 테이블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한 번에 더 많이 생산할 수 있으니까 단가가 절감되긴 하죠. 그런데 욕심을 내자면 끝이 없잖아요. 지금 있는 테이블이 5m인데 만약 50m가 되면 2~3명의 인력으로는 힘들어질 거예요.

원단은 어디서 공수하나요 제가 쓰는 천연잉크는 천연섬유에만 쓸 수 있어요. 아직은 원단을 동대문에서 받아오는데 조만간 방직공장에 가보려고요. 생각보다 동대문 시장의 원단 가격이 저렴하지 않아요. 게다가 저는 원단값을 절대 안 깎아요. 판매하시는 분들이 아직도 지게로 100야드짜리 원단 5~6롤씩을 짊어지고 다니세요. 그 모습을 보면 제가 부자는 아니지만 ‘내가 사는 세상이 몇 년도지?’ 하는 생각이 들어요. 디자인 일을 하면 포스터 하나에 적게는 몇십만원에서 많게는 몇백만원까지 받는데, 봉제공장에서 일하시는 분들은 옷 한 벌에 몇백원 받으시거든요. 그런 걸 알고 나니 못 깎겠어요.

천연섬유는 비싸지 않나요 그렇죠. 폴리에스테르가 섞인 원단은 가격이 절반 정도예요. 면에 폴리에스테르가 섞이면 가격이 엄청 저렴해지죠. 리넨 100%, 면 100% 제품들은 굉장히 비싸요. 또 생활용품을 만들 원단이라 워싱 처리가 잘돼야 하니까 단가가 더 올라가죠.

평범한 식물에 매료된 계기는요 패브릭 제품을 팔기 위해서 이 일을 하는 건 아니에요. 우리나라에 있는 식물의 이름과 생김새 등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었어요. 자연은 항상 우리와 함께 있지만 사실 우린 잘 모르고, 어려워하잖아요. 친환경이 주목받고 있지만 대부분 먹거리에 치우쳐 있어요. 아이들은 ‘한우’가 우리나라 소라는 사실은 생각지 못하고 그냥 식재료라고 알아요. 그런 현실이 안타까웠어요. 마트에 가보면 농산물 종류가 많잖아요. 저도 전에는 감자를 먹는 것으로만 대했지 자라는 모습을 본 적은 없거든요. 다른 식물들도 열매의 생김새는 아는데 꽃이 어떻게 생겼는지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죠. 당근꽃이 어떻게 생겼는지 아세요? 꽃집에서 파는 꽃들보다 훨씬 예뻐요. 그렇게 하루에 하나씩 알아가도 죽을 때까지 다 모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작물 하나하나에 담긴 스토리를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었죠.

그림 하나하나에 스토리가 보여요 제가 스무 살이 되던 해에 어머니가 귀촌을 하셨어요. 어머니가 일주일에 한 번씩 저한테 쌈야채를 보내주셨는데 전 꼭 이름을 물었어요. 맛이 다 다르더라고요. 한번은 그 야채들을 종류별로 다 쌓아놓고 기본 소스만 발라 먹었는데 의외로 맛있었어요. 겨자잎만 먹으면 맵고 상추만 먹으면 싱겁잖아요. 그런데 상추 사이에 겨자잎을 넣으니 상추에 겨자소스를 바른 것 같은 맛이 나요. 그런 것에 재미를 느껴 그림으로 표현하게 됐고, 바스큘럼의 ‘쌈야채 시리즈가’ 탄생했어요. 또 하나 재밌는 건 어머니가 부쳐주는 쌈야채엔 달팽이가 꼭 따라오더라고요. 난감했어요. 키울 수도 없는데 어떻게 해야 하나. 처음엔 유리병에 상추랑 같이 넣어놓기도 하고, 화단에 놔주기도 했어요. 그러면서 쌈야채 시리즈에 달팽이도 추가됐어요.

회화 전공에서 디자인, 다시 그림을 그리는 일로 돌아왔네요 디자인을 그만둬야겠다는 생각이 어느 순간 강해졌어요. 처음엔 디자인도 창작이라고 생각했는데 하다보니 서비스업이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누군가의 손과 발이 되고 있는 느낌이었어요. 결정적으론 제가 평소에 환경에 관심이 많아 종이를 아끼려는 노력을 늘 해왔거든요. 그런데 1년 동안 제 손으로 만든 책이나 인쇄물의 양이 어마어마한 거예요. 책 만드는 일이 쉬워지니까 굳이 없어도 되는 책들까지 너무 많이 만들어진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러다보니 일에 흥미가 떨어졌어요. 사진에 흥미를 잃은 것도 같은 이유예요. 필름 카메라를 쓸 때는 신중하게 셔터를 눌렀거든요. 그런데 디지털로 바뀌고 나선 막 찍잖아요. 저는 그런 방식에는 흥미가 안 생겨요.

어린이 워크숍도 진행하던데요 한국문화예술교육위원회의 의뢰를 받아 진행하고 있어요. 어린이식물그림연구소를 운영 중이고 프로그램도 직접 짜요. 매주 토요일에 2~3시간 진행해요. 아이들과 식물을 함께 보는 건 저에겐 신선한 자극이에요. 아이들은 선생님이 하는 일이 정확히 뭔지도 모르면서 꽤 대단하게 생각하잖아요. 제가 식물에 관한 일을 한다니까 다들 식물에 집중하기 시작하더라고요. 평소에 관심 없어 하던 나뭇가지나 솔방울들을 모으기 시작하고요. 다른 프로그램에서는 숲 속 산책이 15분 만에 끝났다던데 저희는 식물에 대해서 얘기를 하면서 가다보니 1시간을 훌쩍 넘겼어요. 애들이 쪼그리고 앉아서 일어나질 않더라고요. 나무에 있는 버섯도 직접 보고요. 이렇게 수업하면 아이들도 공부가 아니라 놀이라는 생각이 드는지 지루해하지 않아요. 저는 아이들에게 식물에 대한 관심뿐 아니라 사색하는 기회도 주고 싶어요. 요즘 사람들은 스스로 답을 찾지 않잖아요. 남들이 한 명언이나 기사를 링크해 자신의 생각인 양 SNS에 올리죠. 어떤 음식이 나한테 맞는지 아닌지 몇 번 먹어보면 알 텐데 기사로 판단해버리죠. 좋다고 하면 다 먹고요. 그런 사소한 변화들이 삶의 태도까지 만드는 것 같아요. 나무와 대화를 하면 대답이 없어서 스스로 답을 찾게 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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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ASCULUM은 식물학자들이 식물채집을 위해 원통상자를 들고 다니며 식물의 뿌리부터 씨앗까지 전체를 연구한 것처럼 자연의 본래 모습을 관찰하고 그림으로 옮겨 생활 속에 반영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식물패턴제작소. 바스큘럼의 제품은 생강 숍과 시소 프로젝트에서 구입할 수 있다.

어린이식물그림연구소는 8~10세 어린이들과 함께 식물을 채집하고 그려보는 연구소. 식물이 전하는 재밌는 이야기를 기록하고 싶은 어린이라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문의 031-723-7277

에디터:류창희 | 월호:2015년 10월호 | 업데이트:2015-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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