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소 주택 구도심의 재생

오래된 집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구도심의 주택가. 재개발만이 능사가 아님을 보여주는 예가 있다. ‘최대한’ 비워내고 ‘최소한’의 공간에 큰 가치를 담은집. 협소주택이 구도심에 생명력을 불어넣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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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제동 개미마을 작은 집

서울에서 몇 안 남은 달동네, 홍제동 개미마을 초입. 낡고 낮은 지붕들 사이로 짙은 회색 지붕과 하얀 벽의 2층집이 눈에 띈다. 아직 때 하나 묻지 않은 걸 보니 새 집이 분명했다. 여기에 지난 3월 결혼한 신혼부부 이창석, 박혜윤씨가 산다. 이들은 전세금에 쫓겨 다니지 않고, 팔리는 집에 연연하지 않고, 순수하게 ‘내가 행복하게 지낼 수 있는 집’을 짓기로 결심했다. 그렇게 지난 2월, 이름도 ‘작은 집’인 협소주택이 탄생했다. 건축비 1억2000만원을 포함해, 3~4억원 선에서 완성된 집. 서울의 웬만한 주택 전세가다. 집 안으로 들어서면 실내는 30평형대 아파트 크기로 느껴질 만큼 널찍하다. 1층에는 2평 남짓 크기의 안방과 앞으로 아이가 생기면 쓰일 자녀방, 그리고 화장실과 세탁 공간이 있다. 2층에는 주방 겸 거실, 그리고 세모 형태로 비스듬히 기운 지붕(박공지붕) 형태를 그대로 살린 다락방도 있다. 1층 입구와 2층 입구 옆으로 자전거 거치 공간이 있고, 원래 경사가 심한 터를 그대로 살려 1층 입구에서 아래로 경사난 곳에는 평상을 깔고 그네를 달아 마당처럼 활용한다. 부부는 이 작은 집에 자신들이 지향하는 삶의 방식을 적극적으로 반영했다. “10년 넘게 자취생활을 하면서 10번 넘게 이사를 했는데 그때마다 도대체 이게 다 어디 있었나 싶을 만큼 엄청난 쓰레기를 버렸어요. 사는 동안에는 내내 짐들에 치여 좁고 답답하게 생활했고요. 이사하느라 짐을 다 빼고 난 집을 볼 때마다 놀라곤 했죠. 이렇게 넓은 곳이었나 하면서. 그런 경험들이 작은 집을 선택하게 된 이유였어요. 나에게 딱 맞는 공간에서 정말 필요한 것들만 가지고, 심플하게 살자고 결심한 거죠.” 작은 집에 살다보니 소비습관도 점차 변하고 있다. 그 전에는 그다지 필요도 없는 물건들을 사들이곤 했는데, 이젠 ‘이게 우리 집에 정말 필요한 걸까?’, ‘우리 집에 들어갈 데나 있을까?’ 하고 먼저 고민부터 하게 됐다. 그러다보니 불필요한 소비가 점차 줄어들기 시작했다. 부부는 “다른 사람의 기준이나 시선에 신경 쓰기보다는 ‘내’가 어떻게 살고 싶은가에 집중하라”고 조언한다. 집을 지으면서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고 싶은지 고민해볼 수 있었다고. 대충 돈 맞춰 들어간 전셋집이 아니라, 내 삶의 가치를 담은 작은 집이야말로 품격 있는 집 아닐까.

위치 서대문구 홍제동
건물규모 지상 2층
건축면적 44.30㎡
건축설계 OBBA 건축사무소
대지면적 85㎡(26평)
연면적 49.23㎡(15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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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천 협소주택

강남에서 20km, 차로 30분도 채 안 걸리는 과천의 한 주택가 가운데 아무도 주목하지 않던 자투리 땅이 있었다. 20평이 채 안 되는데다 삼각형 모양의 땅이었다. 바로 그곳에 실내건축 디자이너 윤병철씨가 직접 짓고 사는 협소주택이 있다. 3층짜리 이 주택은 왼쪽에서 보면 뾰족한 삼각형 모양이고, 오른쪽에서 보면 멀쩡한 사각형 모양인 희한한 구조. 현관 앞에는 작은 마당을 만들어 아기자기한 텃밭도 가꾸고 나무까지 심었다. 내부 공간은 1층씩 구별되지 않고, 반 층씩 공간을 쌓아 모두 이어지도록 했다. ‘스킵플로어’ 방식으로, 현관에서 반층 내려가면 주방이고 반층을 올라가면 2층 거실이 나오는 식이다. 2층에서 3층으로 올라가기 전에는 다락방이 있고, 3층이 방이다. 이처럼 공간이 층층이 이어지다보니 계단이 중요한 요소가 된다. 계단에 디자인적 요소도 가미하고, 앉아 쉬거나 책을 볼 수 있도록 설계했다. 윤 대표는 집을 계획하면서 가졌던 두 가지 바람을 그대로 반영했다. 마당이 있는 집, 그리고 천창이 있어 밤하늘을 볼 수 있는 집. “작지만 마당이 생기니 아이가 원하던 강아지도 기르고 해먹도 달아 쉬기도 하죠. 또 천창을 따로 만들진 못했지만 남향의 전면 창을 크게 해서 집으로 햇빛도 들이고, 방에서 밤하늘도 올려다볼 수 있어요.” 작은 집으로 이사하면서 생활방식도 많이 달라졌다. “아내가 저보고 부지런해졌다고 하더라고요. 봄이면 나무나 모종을 심고 틈틈이 관리를 해요. 내 집이라 생각하니 더 애착이 생기는 것 같아요. 또 집 안 곳곳에 쌓아두거나 수납장 속에 넣어놓고 입지 않던 옷가지, 안 쓰는 물건들을 자연스럽게 정리하게 되더군요. 저희 부부는 잘 버리지 못하는 사람들이었는데 이 집에서는 저절로 최소한의 삶을 살게 돼요.” 공간이 작다는 건, 수평이동보다는 수직이동이 많다는 것. 불편할 수 있지만, 또한 장점이 될 수도 있다. “층마다 다르게 보이는 풍경도 좋고 계단이 위험할 거란 처음 걱정과 달리 아이도 집에 적응을 잘해요. 맘대로 뛰고 소리지르고 텃밭을 농장이라고 부르면서 물도 주고요. 우리 가족만의 색깔이 담긴 집이 된 것 같아요.”

위치 경기도 과천시
건물규모 지상 3층
건축면적 25.31㎡(7.66평)
건축설계</b> 오파드(OpAd)건축사무소, 윤집
대지면적 50㎡(15.13평)
연면적 46.40㎡(14.04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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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암동 협소주택

남산자락, 서울 한가운데에서 옛모습을 가장 많이 간직한 후암동. 단독주택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고 거주자 외엔 차도 잘 다니지 않는 조용하고 한적한 곳이다. 알록달록 오래된 지붕들이 어깨를 촘촘히 맞대고 있는 주택들 사이로 아주 모던한 흰색 집이 눈에 들어왔다. ‘구도심의 기적’이라 불리며 방송에도 소개됐던, 이웃들에게도 유명한 협소주택이다. 4층 건물인 이곳 역시 스킵플로어 방식으로 공간이 끊이지 않고 이어지는데, 모든 바닥 면적을 합치면 실제 체감하는 실내 면적은 50평대 아파트 부럽지 않다. 이 집의 하이라이트는 옥상 테라스다. 4층방에서 이어지는 테라스에 작은 테이블을 깔고 고기를 구워먹기도 하고, 햇살 좋은 날 바람 쐬며 쉬기에 이보다 좋은 공간이 없다.

위치 용산구 후암동
건물규모 지상 4층
건축면적 35.10㎡(10.62평)
건축설계 공감도시건축
대지면적 62.10㎡(18.79평)
연면적 119.06㎡(36.02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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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동 임조의 오두막

이곳의 건축주는 부모님이 살던 낡은 주택을 허물고 20평이 채 안 되는 땅에 3층 집을 올렸다. 3대가 함께 사는 이 집은 1층은 부모님, 2층은 아이들, 3층은 부부의 공간으로, 각각 다른 크기와 모양으로 각자만의 이야기를 담았다. 도심 속 나만의 안식처가 되는 오두막이라는 의미에서 부부의 성을 따 ‘임조의 오두막’이라 이름 붙였다.

위치 중랑구 묵동
건물규모 지상 3층
건축설계 AAPA 건축사무소
대지면적 60.89㎡(18.42평)
연면적 98.25㎡(29.72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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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동 수작

종로 일대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고, 아기자기한 벽화가 그려진 예쁜 숍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이화동 벽화마을. 그 한가운데에 ‘수작’이라고 적어놓은 작은 간판이 보인다. 뒷골목으로 돌아가야 입구를 찾을 수 있는데, 이곳은 봉제박물관이자, 협소주택이다. 1층은 박물관, 2~4층은 김수연씨가 실제 거주하는 집이다. 실제 건평은 9평밖에 되지 않지만 실내를 가로지르던 기둥과 벽을 다 철거하고 공간을 최대한 확보해 20평은 족히 돼 보인다. 벽화마을 관광객들 사이에서 유명한 개미다방과 테라스 하나를 사이에 둔, 예술가의 집 같은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곳이다.

위치 종로구 이화동
건물규모 지상 4층
건축설계 공감도시건축
대지면적 64.70㎡(19.57평)
건축면적 41.16㎡(12.45평)

에디터:이인철, 성영주 | 월호:2015년 10월호 | 업데이트:2015-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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