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커피에서는 바람 맛이 난다

당신은 언젠가 한 번쯤 그를 지나쳤을지 모른다. 노란 커피트럭을 타고 3년째 전국을 유랑하는 이담. 그의 특별한 커피 여정을 따라가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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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는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라 하고, 어떤 이는 ‘커피여행가’라 한다. 이담(50)은 제주에서 10년을 거주하며 《제주 버킷 리스트 67》을 낸 작가이자, 커피 만드는 사람이다. 그리고 지금은 커피트럭 ‘풍만이(바람이 많다는 뜻)’를 끌고 전국을 유랑 중이다. 그가 매일 여정을 업데이트하는 SNS 타이틀명은 ‘커피여행가의 바람 커피 로드’. 그의 이야기는 다큐멘터리 영화로도 만들어질 예정이다.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의 제작진이 후속작으로 그의 이야기에 주목했다. 2013년 7월에 출발해 햇수로 3년. 햇살 따스하던 어느 날, 풍만이가 춘천에 왔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자그마한 한옥 갤러리 앞마당, 노란 트럭에서 커피를 주문했다.

“신맛은 싫다는 사람에게 일부러 신 커피를 내려줘요. 그래도 맛있다 그러죠. 이 커피는 맛이 없을 수가 없으니까. (기자에게 커피를 건네며) 예가체프(에티오피아산)를 좀 진하게 내린 거예요. 일반 가게에서는 대개 연하게 내리거든. 얘는 양도 많이 넣어서 진하게. 한 번 맛 보면 예가체프 맛을 잊을 수가 없을 거예요.”

그는 주문과 동시에 물을 끓였다. 그날 아침 자그마한 ‘통돌이’에 직접 로스팅한 원두를 꺼낸다. 그리고 커피 향을 맡아보라면서 깔때기에 커피가루를 듬뿍 담았다. 거기에 끓는 물을 쪼로록 따라 천천히 커피를 내린다. 제대로 로스팅한 원두를 진하게 내릴 때, 마치 빵 구울 때처럼 고소한 향이 퍼진다는 걸 그날 처음 알았다. 커피에 대한 그의 설명이 조곤조곤 뒤따랐다. 커피를 전혀 모르는 사람도 귀가 쫑긋해진다. 그에게는 늘 반복되는 일상이지만, 늘 진심으로 반가운 게 바로 커피를 내릴 때다. “나는 커피를 맛없게 만들기가 더 힘들다고 생각해요. 물론 맛의 편차는 있을 수 있어도 기본만 제대로 하면, 먹고 인상 쓸 정도의 커피는 안 나오죠. 난 커피를 다양하게는 못 만들어요. 내가 하는 건 직화 로스팅과 핸드드립, 딱 두 가지. ‘유선생님’(유튜브)한테 배웠는데(웃음), 돈 내고 배웠으면 되게 아까웠을 것 같아. 머신, 라테아트 같은 건 안 하니까 배울 필요가 없었고. 이것만 매일 하다보니 전문가가 안 될 수 없어요.”

자신만의 커피 철학을 읊는 그의 이력은 독특하다. 그는 원래 서울에서 잡지사 기자로 근무했다. 이후 벤처회사를 차렸지만 얼마 안 가 망했다. 당시 그의 손에 남은 건 달랑 노트북과 디지털카메라. 그가 전 재산(?)을 들고 제주로 내려간 게 2004년이다. 당시만 해도 제주 이주가 흔치 않을 때. 이담은 자신의 ‘재산’을 십분 활용해 제주의 산과 바다를 벗삼은 일상을 블로그를 통해 알리기 시작했다. 애월에 여행자센터를 열어 여행 컨설턴트도 했다. 그러다 문득 커피숍을 차렸다. 제주 공항에서 중산간으로 가는 길목에 위치한 산천단. 수령 500년 이상 된 소나무가 신묘한 기운을 내뿜는 곳, 예로부터 제사를 올리던 곳이었다. 거창한 동기가 있었던 건 아니다. 당시 제주에서는 맛있는 커피를 맛보기가 힘들어 직접 한번 만들어보자는 심정이었다. 준비 역시 소박했다. ‘유튜브’ 영상을 통해 독학으로 핸드드립을 깨쳤다. 카페 이름은 ‘바람 카페’. 제주 하면 유명한 ‘바람(wind)’과 그곳에서 제사를 지내던 이들의 ‘바람(wish)’의 의미를 함께 담았다. 그의 커피는 금세 입소문을 탔고, 전국에서 온 여행객들이 카페를 찾았다. 그러기를 3년, 그는 여행객들이 말하는 육지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사람에게는 어떤 시기가 있는 것 같아요. 사회 나와서 처음 10년 정도 기자 생활 열심히 했죠. 그 다음 10년은 제주 생활. 섬이라서 좋았어요. 그때 나한텐 고립이 필요했으니까. 그러다 카페를 하니 손님들이 전국에서 오잖아요. 얘기하다보면 그 동네가 궁금해지는 거야. 제주도도 이제 외부에서 많이 이주해오고, 카페도 많이 생기고. 변화가 많아지니까 흔히 하는 말로 힙하지 않고, 나한텐 뭔가 평범해지더라고요. 그래서 1년 정도 고민했죠. 여행하려면 돈이 많이 들텐데, 돈 벌어서 떠나야지 하다가는 평생 못할 것 같고…. 그러다 예전에 커피 가방 가지고 가서 커피 내려주면서 논 적이 있었는데 그 생각이 난 거죠. 커피 자전거? 스쿠터? 에이, 이왕 하는 김에 트럭이 좋겠다. 검색하다가 이 노란 트럭을 딱 본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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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럭에는 커피머신과 제빙기 등 각종 기구들이 가득했다. 그는 다 들어내고 단출한 핸드드립 세트, 로스팅하고 물 끓일 가스통 하나만 남겼다. 그렇게 출발. 맨 처음은 그와 인연이 있던 출판사 ‘남해의 봄날’의 출판기념회가 열린 통영으로 갔다. 이후로 강원도, 서울, 경기, 이벤트가 있는 곳을 중심으로 자연스럽게 루트가 짜졌다. 커피는 한 잔에 5000원. 그의 말마따나 트럭에서 팔기엔 비싼 값이다. 못 팔면 기름값도 못 채울 텐데, 걱정도 됐다. 그런데 5000원 주고 사 먹는 사람들이 있었고, 덕분에 차는 굴러갔다. 출발할 때나 지금이나 그의 수중에 돈은 거의 없다. 만나서 인연 맺은 사람들이 식사며 잠자리를 제공한다.

“이렇게 다니면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현재 살아가는 모습을 아주 가까이서 보게 돼요. 내가 장사하려고 덤비면 환영을 안 할 텐데, 사람들이 보기에 내가 별로 돈도 못 벌 것 같고(웃음), 커피나 한 잔 마실까 해서 여기저기서 불러주죠. 커피를 매개로 이런저런 얘기를 하면서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 알게 되고. 또 커피라는 주제가 밤새도록 해도 할 얘기가 많거든. 아까 (기자가) 마셨던 것도 세 가지가 다 달라요. 모든 커피가 한 가지 맛이었다면 이렇게 재미있지 않았겠지. 여자 같은 커피가 있는가 하면 남자 같기도 하고, 나이 든 아줌마 같기도, 살랑살랑 아가씨 같기도 해. 그런 것들을 얘기하고 표현해주는 거예요. 그러면서 감각을 깨우는 거지. 입맛의 감각을. 그런 경험이 굉장히 의미 있다고 생각해요.” 지금까지 ‘풍만이’는 경상도와 강원도 지역을 많이 돌았다. 전라도는 이상하게 찾는 사람이 많지 않아 잘 안 갔다. 경상도 지방이 확실히 커피를 더 즐기고, 좋은 커피숍이 많다. 특히 대구 사람들이 커피 맛에 까다롭다고.

“커피는 어디나 어울려요. 그게 커피가 가진 장점이죠. 도시든, 산이든, 바다든. 음식도 뭐랑 먹어도 다 잘 어울려. 커피랑 같이 못 먹는 음식이 뭐 있죠? 커피랑 막걸리? 섞어 먹어도 맛있어요. 또 하나는 한국 사람들이 커피를 정말 좋아한다는 거. 커피에 대해서 궁금해해요. 나는 커피를 좀더 아니까 내가 아는 걸 얘기해주면 그 사람들은 나한테 빚진다는 생각을 하나봐요. 밥도 사주고. 일종의 물물교환 형태로 움직이게 되죠.(웃음)”
“쓸데없는 짓을 하고 다닌다”, “세금은 내냐”며 그를 삐딱하게 보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수도, 그럴 필요도 없다.

“사실 커피값 5000원이면 되게 비싸죠. 1000원만 받아도 되는데 그러면 내가 못 돌아다니니까. 그래서 5000원 이상의 것을 주려고 해요. 작년 8월에 괴산 뮤직 페스티벌 가서 커피를 내리는데, 개량한복 입은 아저씨가 술이 거나해서 오더니 ‘커피가 왜 이렇게 비싸냐’면서 계속 옆에 서 있는 거야. 그래서 그냥 드셔보라고, 만델린(인도네시아산)을 진짜 진하게 내려서 드렸지. 딱 마시더니 이건 돈을 내야겠다는 거야. ‘이 커피는 진짜 재즈 같다’면서 돈을 막 쥐어주고 가요. 나중에 보니까 그 사람이 가수예요. 동요 부르는 포크 가수 이성원. 그게 인연이 돼서 지금도 가끔 연락해요. 커피에는 유일성이라는 게 있어요. 커피 한 잔은 유일한 한 잔이죠. 똑같을 수가 없어. 내릴 때마다 조금씩 달라서 같은 원두도 늘 다른 맛이 나죠. 그러니까 커피를 만든 사람도, 마시는 사람도 그만큼 소중하게 생각한다면 커피란 건 정말 멋진 존재지.”

남들이 복잡한 상권, 사람 많이 다니는 길목을 찾아 다닐 때 그는 바람이 이끄는 한적한 산길, 바닷가에 트럭을 댄다. 깊은 산골, 핸드드립 커피는 평생 구경도 못한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한 잔씩 대접할 때, 그들이 “맛있다”고 웃을 때 그도 웃고, 풍만이도 웃는다. 그래서 그의 커피 맛에는 바람이 깃들어 있는지도 모른다. “요즘 느끼는 게 삶은 좀더 단순해져야 된다는 거예요. 지금은 커피에만 집중할 뿐 다른 건 별로 신경 안 써요. 세상에 저런 커피를 갖고 다니는 사람이 있네, 그냥 재미있게 봐줬으면 해요. 다양한 삶이 있는 거니까. 남들보다 위에 올라가야 하고, 땅을 사고 건물주가 돼야 하고…. 많은 사람들이 너무 하나의 목표를 향해 달려가잖아요. 사람이 더 행복하게 사는 것에 집중해야죠. 나 같은 사람도 있어야 삶이 더 다양해지지 않겠어요?”
기자는 그날 분명히 5000원을 지불했다. 그런데 종일 마신 커피는 족히 7~8잔은 됐다. 자꾸만 맛보라면서 한 잔씩 건넨 탓이다. 살랑살랑 봄바람 같기도, 묵직한 가을바람 향이 나는 것도 같았다. 만약 어느 한적한 시골 마을에서 노란 ‘풍만이’를 만나게 된다면 기꺼이 달려가보기를. 거기에는 커피전도사, 이담이 있다.

에디터:성영주 | 월호:2015년 8월호 | 업데이트:2015-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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