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 서울의 눅 서울

건축가들은 대부분 하나의 건축물뿐 아니라 그것을 감싸고 있는 도시개발에도 관심을 가진다. 후암동 골목 초입에 자리한 ‘눅 서울’은 도시에 어울리는 건축물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증거이다.
274P.jpg
눅 서울 2층의 전경. 침대의 헤드보드까지 이호영씨가 직접 디자인했다.


아무리 아름다운 건축물이라도 주변 분위기와 어우러지지 못하면, 건축물과 그를 감싸고 있는 주변의 풍경 모두 생기를 잃는다. 그만큼 건축물은 ‘어디’에 있는지가 중요하다. 그렇기에 오래된 동네를 개발하는 일은 꼭 필요하면서도 어려운 숙제다.
서울의 변화는 역사와 문화에 대한 존중과 옛것에서 새로운 것을 찾으려는 온고지신의 마음에서 시작한다. 최근 서울 안에 색깔 있는 동네들, 이를테면 연남동의 동진시장, 경리단 길의 장진우 거리, 성수동 공장지대의 변화는 옛것 안에 새로움을 더하려는 젊은이들의 열정이 옛 동네가 갖는 물리적 환경과 새로운 콘텐츠와 만났을 때의 폭발력을 보여준다.

눅 서울(NOOK SEOUL)도 그런 공간이다. 흥미롭게도 눅 서울은 재개발과 보존의 경계 안에 있는 서울역 앞 후암동 언덕 초입에 있다. 첫인상은 그저 놀랍다. 9.3평도 안 되는 면적에 옹벽 위로 매끈하게 서 있는 3층 집이 주변과 묘한 대비를 이룬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안은 더 놀랍다. 일제 강점기 적산가옥(적의 재산이란 뜻으로 과거 일본인 소유의 주택을 말한다)의 형태가 고스란히 남아 있고, 집주인의 관점과 취향이 담긴 조명, 가구, 집기가 어우러져 개성 있는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과거와 현재가 묘하게 얽혀 새로움을 만들어내는 느낌이랄까.

뉴 스폿을 일궈낸 세대가 지금의 20~30대라면 눅 서울을 탄생시킨 이호영씨는 안정된 삶을 누릴 수 있는(혹은 누리고 있는) 베이비부머 세대인 50대다. 그는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세상에서 사람들과의 교감을 꿈꾸며 80년 된 이 낡은 적산가옥을 살려냈다.





274P-2.jpg
새로운 서울을 꿈꾸는 눅 서울의 주인 이호영씨.


눅 서울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서울을 늘 안타까운 시선으로 보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2012년에 현대미술관 서울관을 방문하게 됐습니다. 건축가 민현준씨가 기존의 터를 잘 보존해 전시공간으로 만들었더군요. 한 마디로 전시되는 작품을 존중하는 공간이었습니다. 현대미술관 서울관을 통해 서울도 이제 보여주기 식의 화려한 공간보다는 공유하고, 공감하고, 향유하는 공간으로 변화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고, 그 후 자연스레 눅 서울을 만들자고 결심하게 됐습니다.

눅 서울을 스테이로 만들게 된 계기는 본질적으로 눅은 저의 ‘사랑방’입니다. 단순히 돈벌이나 숙박업소로 접근한 게 아니라 제가 누군가를 만날 때, 내 향기를 가진 공간에서 만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그 사람의 공간에선 그 사람의 향기를 느낄 수 있으니까요. 눅에서는 저의 향기를 느낄 수 있습니다. 하하.

이렇게 오래된 골목은 참 오랜만인 것 같습니다 서울을 연구해야 될 대상으로 바라봤습니다. 그래서 시작한 게 골목 나들이였죠. 골목은 저에게 호기심의 대상이었어요. 서울의 역사와 골목에 관한 책을 구입한 것도 그때쯤입니다. 책을 읽고 하루 5~6시간 걸었습니다. 생수 두 병을 들고 창신동, 이화동, 연남동, 상수동, 합정동 그리고 최근 성수동까지 마냥 돌아다녔죠. ‘향기를 품은 장소는 과연 어디일까’ 하는 의문을 항상 품고 말이죠.

눅 서울의 첫 번째 공간으로 후암동을 선택한 계기는 일단 내가 무슨 일을 꾸미든 사람들이 무관심할 만한 곳을 찾았습니다. 새로운 서울, 그리고 내가 작업하고 싶은 공간을 만들기 위해서 돌아다니다 만난 동네가 후암동입니다. 이곳을 선택한 이유는 남산과 서울성곽을 끼고 있고, 구릉지란 지리적 특성과 색깔이 뚜렷해서 상업적인 공간이 마구잡이식으로 들어오기 쉽지 않을 거라는 판단에서였습니다. 이 동네는 보전지역이지만 길 하나만 건너면 재개발 구역이에요. 재개발이 되는 과정을 재개발되지 않는 곳에서 볼 수 있는 것도 제게는 흥미로운 관찰이 될 것 같았죠. 남산을 워낙 좋아하고, 성벽 문화를 가진 이 지역의 역사성도 매력적으로 다가왔습니다.

눅 서울은 어떤 과정을 통해 만들어졌나요 사실 이 집은 제가 본 집 가운데 가장 저렴했고 그만큼 상태도 워낙 좋지 않았어요. 바로 전에 본 집은 17억을 호가했습니다. 끊임없이 고민하게 했던 그 집과 달리 이 집은 보는 순간 ‘이거다’ 싶었습니다. 구입할 당시 가격은 17억에는 훨씬 못 미치는 금액이었어요. 처음에는 내 감각을 믿고 솜씨 좋은 목수 한 명과 집을 바꿔나갈 생각이었습니다. 그렇게 작업을 시작했는데 며칠 지나지 않아 목수가 포기하겠다는 말을 에둘러서 하더군요. 그때 ‘아, 내가 교만했구나’ 깨달았습니다. 그 후 후암동 소재지의 건축사무소를 찾았고 서울대 김승회 건축가를 만나게 됐습니다. 김승회 교수는 “건축가로서 80년 된 건축물을 만나는 것은 굉장히 드문 일”이라며 관심을 표했습니다. 김 교수와는 조화로움, 균형감, 옛것과 새것의 믹스매치에 대한 생각이 서로 비슷했습니다. 그렇게 눅 서울이 탄생하게 됐죠.

눅 서울의 방문자들이 알아야 할 정보가 있다면 눅은 ‘아늑하고 조용한’이란 뜻입니다. ‘드러나는 게 없다’는 점이 눅의 가장 큰 특징입니다. 저 멀리 나무가 보이고, 옛날 주택에 도둑을 막기 위해 담 위에 꽂혀 있던 쇠꼬챙이도 이곳에서는 다 보입니다. 아슬아슬해 보이는 옆집 지붕에 고양이 한 마리가 앉아 있으면 풍경이 완성되겠죠. 내 집과 옆집의 구분도 명확하지 않습니다. 벽을 같이 쓰는 흔히 말해 합벽된 집이에요. 그런 정서가 좋습니다. 서로 의지하고 있다는 느낌이 드니까요. 외관을 거의 허무는 대신 코너에 붉은 벽돌을 뒀어요. 내관뿐 아니라 외관도 옛것을 존중하려고 했습니다. 전에 살고 있던 할머니와 또 그 전에 살았던 분들의 역사를 존중하고 싶었습니다. 2층 벽엔 회벽 마감을 하지 않았습니다. 80년 된 건물이다보니 벽지가 10장도 넘게 덧발라져 있었어요. 운 좋게도 그걸 다 뗀 후 회벽 마감을 하기 바로 전날 제가 그걸 봤어요. 그대로의 느낌이 좋아서 그냥 남겨뒀습니다. 옛것을 존중하는 것이 ‘눅’의 콘셉트입니다. 콜라보레이션으로 함께 한 고명근 작가의 투명한 입체작품과 김흥진 공예작가의 감칠맛나는 장식장, 리스톤과 함께 만든 돌침대까지 눅은 오브제와 가구가 잘 어우러져 있습니다. 그 외에 채워진 물품은 책상과 조명, 의자 등 모두 제가 최소 10년 이상 사용해온 것들입니다. 평소 꾸준한 관심과 정성으로 모은 이런 물건들에는 모두 저마다의 이야기기가 있습니다. 그 이야기들 또한 눅만의 재미죠. 변기에 앉아서 볼일을 볼 때 눈앞에 고 김수근 선생님의 마지막 작품인 불광동 성당이 보이는 것까지도요.

어떤 사람들이, 어떻게 향유했으면 하나요 젊은 친구들이 이 공간의 가치를 인정해주고, 찾아줄 때 무척 고마워요. 개인적으로는 나와 관심사가 비슷하고 그것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들이 왔으면 좋겠어요. 문화에 대한 담론을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이 와서 앞으로 눅과 함께 많은 이야기들을 만들어갔으면 합니다. 그래서 눅은 아직은 약간 모자라게, 부족하게, 남들이 보기에 안타깝게 보였으면 좋겠어요. 다양하게 채워나갈 여지를 남겨두는 거죠.

눅 서울의 주변도 궁금합니다 7분 거리에 남대문 시장이 있고, 후암동 재래시장은 걸어서 3분 거리에 있습니다. 전에는 몰랐는데 후암동에 터를 잡고 다녀보니 순대국집, 고깃집 등 마을에 스며든 흥미로운 장소들이 많더군요. 그런 향기와 애티튜드를 가진 공간들이 많은 게 후암동의 매력이 아닐까 싶습니다. 김밥 한 줄 사 들고 성벽 나들이를 즐겨보는 것도 좋고요.

주소 서울시 용산구 소월로2나길 6-2
문의 010-9366-2408 홈페이지 www.nookseoul.com





274P-3.jpg
1 어느 것 하나도 헛되이 버리지 않고, 살려뒀다. 저멀리 남산이 보이는 창문의 위.
2 계단 틀에 올려진 이 물건은 종로의 풍물 시장을 돌아다니며 발견한 것.
3 저렴하게 구입한 전구도 눅 서울에 있으니 멋스럽다.
4 1층과 2층을 연결하는 계단. 조금은 좁고, 가파르지만 나무 계단 특유의 소리가 정겹다.
5 깔끔한 1층 내부. 햇살이 잘 들어오는 손님맞이 테이블.
6 잠깐 쉬었다 가세요.
7 회벽 마감을 하지 않은 2층의 벽.





NOOK SEOUL

80년 된 적산가옥이 눅 서울로 변신하기까지. 변신 전과 변신 후를 공개한다.

274P-4.jpg
1 before 한눈에 봐도 오래된 건물임을 알아볼 수 있는 적산가옥의 외관.
after 눅 서울의 콘셉트는 명확하게 온고지신. 벽돌 한 줄을 그대로 살려두고 모던함을 더했다.

2 before 스티커의 잔해가 남은 흰색 타일과 삐걱대는 나무 받침대가 시간의 흐름을 보여준다.
after 갤러리에 온 듯한 느낌을 주는 현관. 문 손잡이는 이호영씨의 컬렉션 중 하나다.

3 before 듬성듬성 남아 있는 타일과 생뚱맞게 솟은 수도관.
after 수도관의 화려한 변신. 오래되고 평범한 수도관이 하나의 오브제가 됐다.

4 before 닿을 듯 닿지 않는 곳에 있는 옆집. 조금은 위태로워 보인다.
after 햇살이 잘 드는 2층 명당.

에디터:류창희 | 월호:2015년 9월호 | 업데이트:2015-09-01

event&research

more

DEBUT

more

MENTORING

more

주부생활 프렌즈 기자단

more
주부생활 트윗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