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국의 출력하는 삶

주체가 있는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생각하고, 말하고, 글로 써라
0132.jpg
대통령 연설문의 충격적 실상이 밝혀진 후여서일까. 김대중, 노무현 두 대통령 연설비서관을 지낸 강원국이 펴낸 《대통령의 글쓰기》(메디치미디어)라는 책이 연일 화제다.
연설비서관이 써온 글을 단 한 번도 그대로 통과시킨 적이 없었던 김대중 대통령, 연설 직전까지 수정에 수정을 거듭했던 노무현 대통령.
말과 글에 관한 한 그 누구보다도 세심하고 까다로웠던 두 대통령의 연설비서관으로 일하면서 체득한 글쓰기의 고급 기술을 책으로 묶어 낸 그는 말과 글을 잘 쓰려는 노력이야말로 개인의 삶은 물론 우리 사회의 건강한 발전과도 직결된다고 역설한다.

《대통령의 글쓰기》가 주목받는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나
아무래도 대통령 연설문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대한 관심이 가장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또 하나는 현 시국에 대한 배신감과 허탈함, 자존감에 손상을 입은 사람들이 이 책을 통해 일정 부분 위로를 받는 것도 같다.
우리에게도 이런 대통령이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하면서.

이 책을 통해 가장 하고 싶었던 말은 무엇인가
리더가 되려는 사람이라면 자기 생각을 글로 쓸 줄 알아야 한다는 것.
비단 리더만이 아니다.
자기 생각을 글로 표현하지 못하면 여러 형태의 어려움에 봉착하게 된다.
몽테뉴는 《수상록》에서 “글을 잘 쓴다는 것은 잘 생각하는 것”이라고 했다.
김대중, 노무현의 글이 갖는 힘 역시 그들의 생각에서 비롯됐다.
정보는 널려 있고 글감은 많다.
구슬을 꿰는 실이 필요하다. 실은 어디서 얻을까? 바로 생각이다.
생각이야말로 글쓰기의 기본이다.
최근 대통령의 연설문 수정 파문 이후 글쓰기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 생각은 스스로 써야 하는구나’, ‘남이 써주는 안 되는구나’, ‘부끄러운 일이구나’ 하고 새삼 인식하는 것 같다.
지금까지 우리 사회에선 누가 대신 써주는 글을 읽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는데, 앞으로 이 부분에 대한 관심과 인식이 높아질 것 같다.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의 연설문도 결국 연설비서관이 대신 쓴 것 아닌가
연설문은 100% 대통령의 생각이다. 연설비서관은 바쁜 대통령을 대신해 그의 말과 글을 다듬는 일을 한다고 보면 된다.
그러려면 대통령과 물아일체가 되어야 가능하다.
평소에도 대통령의 생각과 말을 쫓아가야 한다.
노무현 대통령은 늘 생각하고 글을 쓰고 말을 했다.
공식 일정이 없을 때도 일을 손에서 놓지 않았고 관저에서도 글을 쓰셨던 분이다.
‘글반’이라고 해서 글쓰기에 관심 있는 사람들을 모아서 휴일에 모임을 열기도 했다.
주로 주말에 글반 모임을 했기 때문에 내겐 고역이기도 했다.
연설문을 쓴다는 것은, 곧 대통령 생각의 과녁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두 대통령의 스타일을 보여줄 만한 에피소드가 있나
두 대통령은 많은 점에서 달랐지만 광적으로 집착한 다섯 가지는 신기하리만큼 같았다.
바로 독서, 토론, 학습, 관찰, 메모였다.
두 대통령의 끊임없는 노력에 큰 감명을 받았다. 위기에 봉착하면 그 사람의 진면목이 드러나게 되는데, 노무현 대통령은 정치자금 문제에 휘말렸을 때, 사과문을 발표하기에 앞서 내가 쓴 연설문 초안을 전혀 보지 않았다.
“ 이런 건 내가 직접 써야지. 치아라” 하며 직접 썼다.
그 사과문에서 그분의 진정성을 느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죄송하고 이런 일은 정말 잘못했다 하나하나 다 밝혀 비서실장이 이렇게까지 쓸 필요는 없다고 걸러낼 정도였다. 그 분의 진정한 속내를 처음 그 글을 본 나는 알고 있다.


리더는 어떤 사람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나
리더는 누가 무엇을 묻든 명쾌하게 대답해야 한다.
그러려면 두 가지가 필요하다. 첫째, 생각이 있어야 하고 둘째, 그 생각을 표현할 줄 알아야 한다.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모두 리더는 아니다.
설득력이 있어야 하고, 실천으로 이어지게 할 만큼 영향력을 가져야 진정한 리더다.

얼마 전 <말하는 대로>에 출연해 ‘말과 글쓰기’를 강조하면서 이를 ‘출력하는 삶’이라 표현했다
다른 사람의 생각과 말을 듣고 받아들이는 것은 잘하지만 자신의 생각을 잘 쓰고 잘 말하는지 한번 생각해보자는 이야기였다.
말을 잘하는 것은 가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우리사회에서는 말 잘하는 사람을 ‘입만 살았다’며 크게 인정하지 않는다.
자기의 주관과 생각이 있어야 비로소 말을 잘하고 글을 잘 쓸 수 있다.
출력되지 않는 생각은 안에만 머물러 있기 때문에 남의 생각과 합쳐지지 않는다.
생각을 꺼내놓고 평가받고 합쳐져야 더 좋은 생각이 생산되고 사회, 나라가 발전된다.
하지만 우리사회에선 기본적으로 출력이 어렵다.
우선 생각부터 없다. 융합과 통섭의 시대라지만, 내 생각을 분명하게 내놓는 데 서툴기 때문에 남의 생각과 섞이기 어렵다. 심각한 문제다.

표현을 못하는 것은 개인적 문제이기도 하지만, 여전히 권위적인 사회 분위기 탓도 있다
동의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지시와 통제에 익숙하고, 받아쓰기를 잘한다.
시끄럽게 나서서 말하는 사람보다는 말없이 시키는 일을 묵묵하게 처리하는 사람들이 더 좋게 평가받는다.
이런 사람들이 학교에서도 모범생이고 사회에서도 출세했다.
그러나 이것은 남의 말을 잘 듣고 그대로 행동하는 것일 뿐이다.
읽고 듣기를 잘하는 것인데, 이 능력은 산업화시대에나 유용했다. 그때는 말이 많으면 가볍고 ‘말만 앞선다’고 치부하며 실행력이 없는 사람이라는 프레임을 씌웠다.
하지만 생각해보라. 말을 못하면 글을 못 쓴다.
무엇보다 말을 안 하는 조직이나 사회는 위험을 포착하지 못한다.
침묵하는 사회는 위기를 보고도 침묵하기 때문에 예상치 못한 위험이 닥쳐오면 우왕좌왕하게 된다.
현 청와대도 4년을 조용하게 있었다. 그동안 위기를 전혀 감지하지 못했겠는가.
아닐 것이다. 말을 하면 내쳐졌을 것이다. 이젠 달라져야 한다.




0227.jpg
좋은 말, 좋은 글은 어떤 것인가
변화를 이끌어야 한다. 사람을 움직이게 만들어야 한다.
영향을 미치고 변화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정치란 무엇을 바로잡고 누군가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이고 그런 면에서 보면 글쓰기야말로 가장 정치적인 행위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라 했다.
《동물농장》을 쓴 작가 조지 오웰은 사람은 네 가지 이유로 글을 쓴다고 말했다.
첫째는 순전한 이기심, 즉 잘난 척하기 위해서.
둘째는 예술적 충동, 셋째는 역사적 책무, 마지막이 정치적 목적이다.
조지 오웰 자신은 정치적 목적으로 글을 쓴다고 밝혔다.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미치기 위해서 말이다.
국회의원만 정치를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것이 실은 정치와 관련돼 있다.
무색무취, 아무 영향도 못 미치는 글은 쓰지 말아야 한다.

선진국에서는 디베이트 능력을 중요하게 평가한다.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그 힘이 아직 약하다
그것이 바로 말하기이다.
미국에서는 대학 가려면 에세이를 써야 한다.
이제 우리 부모들도 잘 생각해야 한다. 무조건 공부해라, 책 읽어라, 선생님 말씀 잘 들으라고만 할 것이 아니라 대화를 많이 나눠야 한다.
아이들이 자유롭게 말하려 하면 “공부 안 하고 시끄럽게 뭐하냐” 핀잔할 게 아니라 더 잘 말하도록 해줘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공부’는 읽고 듣는 것, 즉 남의 지식을 채우는 것이다.
자기 것이 없다.
앞으로 이런 사람은 인재가 안 된다.
앞서가려면 기발한 생각과 아이디어가 있어야 하고 그것을 말하고 쓸 줄 아는 표현력을 길러야 한다.

실제 자녀교육은 어떻게 했나
아들이 하나인데 대학교 2학년이다.
나는 아들이 어릴 때부터 얘기했다. “사회 나가보니 학교 공부 아무 소용없다. 결국 사회에서 필요한 건 말하고 표현하는 능력이다. 회사에서도 보고하고 발표하는 걸로 평가 받는다. 공부하지 말고 하루 하나씩 너의 생각을 만들어라.”
예를 들어 ‘당신은 보수입니까, 진보입니까’ 고 물었을 때 무엇이라 답할 것인지, 또 그 이유가 무엇인지까지 설득력 있게 이야기를 할 수 있어야 한다.
고등학교 때부터는 하루에 단 3분만이라도 무언가를 생각해보라고 했다.
학교에서 배운 수학은 어디에 쓰이는가. 국어도 마찬가지다.
무슨 체다, 저자의 호가 무엇이다 같은 걸 알아서 뭐하는가.
그런 것 잘 외운 학생은 시험을 잘 치고, 대학에 잘간다. 고시도 마찬가지다.
그런 아이는 요약능력과 암기력만 있으면 성공한다.
하지만 자기 생각은 부족하다.
학교 공부가 아니라 사회에 나가서 잘살 수 있는 능력을 스스로 길러야 한다.
부모가 그 중심을 잘 잡아줘야 한다.


"우리나라 아이들은 부모나 교사에게 혼나지 않기 위해 살고 있다. 회피동기로 책도 읽고 공부도 한다.
이건 잘못이다. 접근 동기로 살아야 한다. 칭찬받기 위해 무엇이든 해야 한다. 무엇을 시키지 말고 아이를 가만히 둬보라.
그러면 좋아하는 일을 스스로 찾아간다.
그것이 진정한 공부다."



인성교육에 대한 소신도 궁금하다
자기 생각이 확고해야 한다. 그런 아이는 어지간한 일에 휘둘리지 않는다.
쉽게 의기소침하거나 좌절하지 않고 포기하지 않는다.
중심을 잘 잡고 있기 때문에 단단하다.
그런 아이는 주변에 선한 영향력을 미치고, 정의감이 넘치고, 사회 발전에 기여한다.
왜냐하면 자기 생각이 있기 때문이다.
생각이 없는 아이는 눈치만 보고 따라간다.
그렇게 살다보면 행복하지 않은 삶을 그냥 산다.

남다른 사고력을 함양하고 출력을 잘할 줄 아는 아이로 키우기 위해, 집에서부터 실천할 수 있는 구체적인 교육법은 무엇일까
역시 마찬가지다. 많이 말하고 쓰게 하면 된다.
예를 들어 독서도 부모가 책을 정해주면서 읽고 독후감을 쓰라고 하면 안 된다.
스스로가 읽고 싶은 것을 읽어야 한다.
만화든 소설이든. 사람에겐 지적호기심이 있기 때문에 어떤 책이든 읽다보면 호기심이 자꾸 확장된다.
요즘 우리나라 아이들은 부모나 교사에게 혼나지 않기 위해 살고 있다.
회피동기로 책도 읽고 공부도 한다.
이건 잘못이다.
접근 동기로 살아야 한다.
칭찬받기 위해 무엇이든 해야 한다.
무엇을 시키지 말고 아이를 가만히 둬보라. 그러면 좋아하는 일을 스스로 찾아간다.
그것이 진정한 공부다.
부모 입장에서는 그 과정이 불안할 수 있다.
중간만 따라가는 시대에 남들 하는 만큼만 시키니까 아이들은 괴롭다.
부모의 결단이 중요하다.
지금 우리나라의 교육은 경쟁이다.
모두 같은 트랙을 앞에 두고 벌이는. 그곳에서 경쟁을 시키니 아이들이 힘들어하는 것이다.
하지만 트랙을 좀 달리해보자.
각자 갈 길로 말이다. 경쟁이 아니라, 자기의 길을 사방천지로 찾으며 다닌다.
그런 삶이 아이들에게도 즐겁다.

집에서도 잘 표현하는 남편, 아빠가 화목한 가정을 이룰 것 같다
나는 집에서도 잘 표현하는 남편이다.
부부가 대화를 많이 해야 자녀들이 올바르게 큰다.
아이들은 부모의 말을 들으면서 자라기 때문이다.
말이 없는 집에서 자란 아이는 눈치가 없고 상황대처능력이 떨어진다.
항상 불안하고 답답하다.
사회에 나와서도 무엇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잘 모른다.
하지만 말이 많은 가정에서 자란 아이는 명랑하고, 알아서 일처리를 잘한다.
아이들이 소파에 앉아 이야기를 시작하면 ‘들어가서 공부나 해’ 하고 등 떠밀지 말고, TV를 보면서도 대화를 많이 나누는 게 좋다.

이제 막 말하고 글쓰기를 실천하려는 사람에게 조언을 한다면
자기만의 요새 혹은 아지트라 할 글쓰기 공간을 먼저 만들기를 권한다.
노트도 괜찮고 블로그나 SNS도 좋다.
기쁜 일이나 걱정거리, 갈등이 있을 때 그런 공간에 글을 쓰다보면 치유를 경험하게 되고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말과 글로 마주한 나야말로 진짜 나이기 때문이다.
스스로가 존재하는 삶을 살려면 나만의 공간에 내 생각을 풀어놓으면서 수시로 나를 확인해야 한다.
매일 거울을 통해 얼굴을 비춰보듯이.
이렇게 자신의 진지를 구축한 사람은 백그라운드가 있는 것처럼 든든하다.
이렇게 쌓아올린 데이터베이스가 있으면 언제 어떤 상황에서나 말과 글로 나 자신을 표현할 수 있도록 해준다.
나만의 빅데이터를 가지고 있는 셈이다.


에디터:이영민 | 월호:2017년 1월호 | 업데이트:2017-01-03

event&research

more

DEBUT

more

MENTORING

more

주부생활 프렌즈 기자단

more
주부생활 트윗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