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종학 이야기

계절은 이미 겨울을 향해 가지만 손종학은 지금 꽃 피는 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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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멋쟁이는 계절을 앞서간다 했던가.
아직 본격 추위가 오기 전인 늦가을의 한낮, 온화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손종학은 두꺼운 오리털 점퍼 차림이었다.
반백의 머리가 패딩의 빨간색과 묘하게 대조돼 시선을 더 집중시켰다.
평소엔 스냅백을 즐겨 쓰지만 오늘은 특별히 머리에 힘을 준 날이라 벗었다고.
그러고보니 <라디오스타>에 출연했을 때 그가 스스로 밝힌 별명이 ‘손블리’였던가. <미생>의 마부장 역을 맡으면서 뒤늦게 얼굴이 알려졌지만, 그는 대학로에서는 모르면 간첩이라 할 만큼 지명도가 높다.
1987년 마당극 <서울 말뚝>으로 연극무대에 데뷔했고, 이후 <늙은 부부이야기>, <날 보러와요>, <필로우맨> 등 굵직한 작품들에 출연하며 탄탄한 필모그래피를 쌓아왔다.
그러다 우연히 <미생>에 출연한 것을 필두로 <욱씨 남정기>, <내부자들>, <검은사제들>, <검사외전> 등 드라마와 영화 등에서 주조연으로 연기 스펙트럼을 넓혔고, 최근 종영한 <공항 가는 길>에서 석이 삼촌 역을 맡으며 다시 한 번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흰머리는 본인 것인가요
어려서부터 새치가 많았어요. 지금도 새치죠. 예전엔 줄곧 염색을 했는데, 이젠 두피가 아파 힘들어요.
다행히 이번 작품에선 염색할 필요가 없어 편하게 작업했네요.

<공항 가는 길>은 특히 기혼여성들로부터 큰 호응을 받았죠. 끝나고 나니 어떠세요
시원섭섭해요. 영화 <봄날은 간다> 이숙연 작가의 서정적인 대사와 김철규 감독의 아름다운 영상미가 만나 좋은 결과물을 만들었어요.
함께 연기한 선후배들과의 호흡도 좋았고요.
예수정 선배 연기야 두말할 것 없고, 장희진과는 <도희야>에서도 만난 적 있어 친근했어요.
상윤이는 안면만 있던 사이였는데, 알면 알수록 참 바르고 착해 외려 제가 배우는 친구죠.

배경도 아름다웠어요. 제주도는 물론이고 고택도요. 어디죠
알려주기 싫은데(웃음), 용인 마북동에 있는 장욱진 고택이에요.
보기에만 좋아요. 모기가 너무 많았고, 은행나무가 엄청나게 많아 냄새가 굉장했거든요.
촬영 날마다 은행 주워서 구워먹곤 했어요.
제주도에선 또 계속 비가 오고 바람이 많이 불어 스태프들이 애 많이 먹었죠.

줄곧 마부장 같은 악역을 맡아왔어요. 편안하고 푸근한 역은 거의 처음이죠
막상 착한 역할 해보니까 재미는 없더라고요.
‘뭐 좀 했구나’ 하는 느낌이 없달까.
악역을 맡으면 나름의 카타르시스가 있거든요.
하지만 편하고 좋았어요.
스태프들과 배우들까지 하나같이 유순한 사람들이라 분위기가 늘 화기애애했어요.

남이 하면 불륜, 내가 하면 로맨스라잖아요. 이 드라마도 통념의 잣대에선 마냥 자유로울 수 없는 소재를 다뤘어요
서도우와 최수아라면 한눈팔 수밖에 없는 입장이죠.
하지만 현실로 인물을 끄집어내면 마냥 이해할 순 없겠죠.
우리나라에서 이미 도덕성이란 건 땅에 떨어졌죠. 간통죄가 폐지되고, 각자 알아서 책임을 지라고 하니까요.
국회의원들이 국회에서 누드사진을 보고 음주운전 사건을 조작한 사람이 경찰청장이 되는 사회잖아요.
실은 배우들이 할 일이 별로 없어요.
정치권에서 이렇게 재미있는 일을 많이 하니까 말이에요.
뉴스가 드라마보다 시청률이 더 좋은 세상이라니 씁쓸하네요.

오랜 무명시절을 거쳤고 사회성 짙은 작품도 많이 했죠
사람은 정치적인 동물이잖아요. 작품 속에서 내가 기득권층을 맡을 때면 좀더 악랄하게 연기해요.
그리고 어떻게 하면 더 나쁘게 보일까 싶어 고민해요.
관객들이 왜 저렇게까지 나쁠까 싶을 정도로요.
왜냐면, 현실은 더하니까요.

유독 애착이 가는 작품이 있나요
굉장히 많지만 꼭 하나만 꼽아야 한다면 <늙은 부부 이야기>예요.
이 작품을 서른일곱에 시작해서 3년간 했어요.
제 뒤로 이순재, 양택조 등 많은 배우들이 하셨죠.
첫 공연 막을 올릴 때 합류해 함께 연극을 만들고, 고생하고, 히트를 친 작품이라 애증이 교차하죠.

다양한 매체를 통해 연기를 해왔는데, 희열이 가장 큰 곳은 어딘가요
소극장이죠. 그 ‘맛’은 뭐라고 설명을 할 수가 없어요.
관객들과 함께 호흡하면서 쫙 끌어오다가 풀어주고 다시 조이는 것이 오직 나로 인해 가능하니까요.
관객들이 내 연기에 집중해 나와 하나가 되면 쾌감이 엄청 나요.
영화와 드라마는 다르죠.
연극만 하다 영화나 드라마 현장에 가면 처음엔 적응이 힘들어요.
뒷 분량을 앞에 찍질 않나, 순서가 왔다갔다하고, 어마어마한 스태프들이 테스트하니 집중력과 감정이 깨지기 마련이거든요.
물론 현장 나름의 매력이 있긴 하죠.

그래서일까요. 일반적으로 연극배우 출신이라고 하면 믿고 보는 것 같아요
아무래도 트레이닝 과정이 다르니까요.
누가 시켜서 연기하는 게 아니거든요.
스스로 트레이닝해야 하고, 그 안에서 작품을 분석하는 법, 말하고 숨쉬는 법까지 하나하나를 깨쳐야 해요.
무대를 종합적으로 캐치해야 내가 연기하는 인물이 완성되죠.
잔 스킬로는 승부할 수 없는 게 바로 무대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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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을 주는 사람>도 촬영 중이에요. 일일드라마를 택한 이유가 있나요
어머니 보시라고요.
미니시리즈는 늦게 방송하니 주무셔야 하고, 저녁 시간에 하는 일일드라마는 보시기에 좋을 것 같아서 출연을 결심했어요.
팔순이 다 되셨는데, 워낙 과묵하셔서 아들이 텔레비전에 나와도 좋다는 내색은 안 하시지만 느낌으로 알죠.
제가 처음 연기한다고 했을 때는 굉장히 반대하셨지만, 이젠 인정해주세요.

대학 때 학업을 그만두고 갑자기 연기를 시작했다고요. 다들 연극하면 배고프고 어렵다고 하던데, 어땠어요
재미없는 건축을 전공했거든요.
공연 보러 다니다 이거 재미있겠다, 할 만하다 싶더라고요, 극단 공고를 보고 무턱대고 찾아갔어요.
정말 재미있었어요.
젊은데 힘든 게 어디 있어요. 남들은 대체 뭐하는 놈이냐 걱정했을지 모르지만 저는 아주 행복했어요.
물론 차비가 없어 밖에 못 나올 정도로 경제적으로 궁핍한 때도 있었지만 물질이 행복을 대신할 순 없죠.
재미있으니까 그 시절을 버텼어요. 대본을 받으면 그렇게 설레고 신이 날 수가 없었어요.

세상에 필요없는 경험은 없다잖아요. 짧지만 건축을 공부했고, 고생이라면 고생을 해본 경험이 지금의 든든한 거름이 됐겠죠
정말 맞아요.
젊을 때 껌도 좀 씹어보고, 사고도 쳐본 친구들이 모범생으로 자란 친구보다 연기 스펙트럼이 넓은 것 같아요.
아무리 문제아 소리를 듣더라도 질풍노도의 시기를 지나 철이 들 때쯤 인간미가 생기거든요.
물론 직장생활을 할 때도 그럴 거라봐요.
사고의 폭이 넓으니 입장 차이를 원만하게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요.

연기 인생에 가장 보탬이 된 경험이 있나요
지우고 싶은 과거도 많지만, 지나온 모든 순간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죠.
특히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는 잊을 수가 없어요.
연극배우로 열심히 활동할 때인데 병원에 입원해 계시던 아버지께서 연기를 그만하라고 하셨어요.
저보다 잘생기고 틀이 좋은 애들이 많다면서요.
우리 아버지는 고슴도치과가 아니셨나보죠.
여튼 그렇게 반대를 심하게 하셨는데도 뜻을 굽히지 않았어요.
그렇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이듬해 연기대상을 받아 제사상에 상패를 올렸어요.
2002년에 돌아가셨는데, 2003년부터 돈 되는 작업이 들어오더라고요.
잘 풀리는 걸 못 보고 가셔서 아쉽고 죄송해요.

오늘 만나보니 그간 연기했던 ‘개저씨’와는 전혀 다른데요. 직장에서 소위 꼰대 같은 행동을 하는 남자어른을 두고 ‘개저씨’라 부르는 시대지만, 비슷한 연배의 남자로서 공감이 가는 부분도 없지 않을 것 같아요
당연하죠.
자라온 환경이 다르고 입장 차이 때문에 문제가 생기는 것 같아요.
개저씨라 불리는 사람들도 알고보면 열악한 상황을 모질게 버텨서 살아남은 사람들이잖아요.
그 사람들 입장에서 볼 때 얼마나 요즘 사람들이 답답하겠어요.
본인들은 어른 앞에서 담배도 제대로 못 폈는데, 요즘엔 맞담배에 여자들도 길담배를 피는 세상이니까요.
조금만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하면 풀릴 텐데 욱하는 것 때문에 사단이 나는 거죠.

버릇 없고 이해 안 가는 친구들을 만나면 어떻게 행동하나요
나도 젊었을 때 버릇 없던 사람이라(웃음).
전 요즘 젊은이들 행동 괜찮던데요.
악의가 있는 게 아니니까요.
돌이켜보면 저도 20대 때 남들은 선생님이라 부르는 연배에게 형님이라 불렀어요.
미친 거 아니냔 말도 많이 들었죠.
호칭일 뿐이고, 기호일 뿐이죠. 제 아들이 고2, 중3인데 저는 아들들에게 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한 적이 별로 없어요.
방목 스타일이죠.

다행히 사춘기는 넘겼네요
사춘기가 왔는지도 몰랐어요.
워낙 숙맥이라.
사고도 좀 쳤으면 좋겠는데, 유순하고 조용해요.
나도 과묵한 편이라 우리 집에선 다들 말이 별로 없어요.
우리 가족은 바라만 봐도 통하는 사이랄까.

아이들한테 욱하는 아빠는 아니네요
집에선 별로 큰소리낸 적이 없어요.
하지만 요즘 같을 때, 말도 안 되는 이 시국 때문에 욱하네요.
홧병이 날 거 같아요.
술 한잔 마시면서 삭히는 거죠.

데뷔 30년차 배우도 스스로 채찍질을 하나요
매 작품마다 자기반성을 해요.
머리가 나빠서 수학은 못하지만, 나에 대해 ‘잘하고 있나’, ‘이건 잘못된 것 아닌가’ 이런 생각은 끊임없이 하는 편이죠.
스스로 타협하면 안 될 것 같아요.
자신에게 관대해지는 순간 이 바닥에서는 살아남을 수 없어요.
러시아의 연극연출가이자 배우인 콘스탄틴 스타니슬랍스키 형님은 돌아가셨지만, 그분이 남긴 큰 가르침 안에서 나를 속이지 않으려 노력해요.

너무나 치열한 곳이죠. 그만큼 운도 따라야 하고요
공정했으면 좋겠어요. 모두에게 공평한 게임이 됐으면 좋겠는데 있는 자들이 없는 자들 것까지 빼앗네요.
나처럼 돈도, 백도 없고, 맨땅에 헤딩하면서 살아온 사람들의 몫까지요.

앞으로 계획이나 목표는 뭔가요
전 계획 짜는 법, 목표 세우는 법을 몰라요.
여태껏 그렇게 살아와서 그래요.
하루하루 성실하게 최선을 다해 즐겁게 사는 게 목표예요.
아, 꿈이 하나 있긴 하네요. 좋은 나라에서 살고 싶어요.

에디터:이영민 | 월호:2016년 1월호 | 업데이트:2016-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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