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아는 남자, 민진웅

<혼술남녀>가 캐낸 원석 민진웅. 만반의 준비 후 출발선상에서 숨고르기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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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두 종류의 신인이 있다. 패기와 열정이 가득한 예스맨 혹은 모든 게 수줍고 낯선 샤이보이.
<혼술남녀>에서 보여준 성대모사와 명랑쾌활한 연기 때문에 전자일 거라 지레 짐작했지만 민진웅은 후자였다.
말수 없이 묵묵히 촬영에 임하던 그가 포토그래퍼가 카메라를 내려놓자 “휴” 깊은 안도의 한숨을 내뱉는다.
“오늘이 제 인생 첫 화보거든요. 포즈를 어떻게 잡아야 할지 몰라 맘속으로 GD가 되었다가, <아수라>의 김원해 선생님이 되었다 했어요.
아직은 인간 민진웅으로 카메라 앞에 서기 부끄럽네요.” 우려와 달리 그는 188cm 키에 모델 뺨치는 눈빛과 포즈로 프레임을 응시하며 능숙하게 촬영을 이어갔다.
의상 네 벌을 다 소화한 후 드디어 마주 앉은 자리, 민진웅의 눈이 가장 먼저 보인다.
나이가 들면 세상의 때가 묻기 마련인데 서른한 살 그의 눈망울은 소년의 것처럼 맑았다.
칭찬을 건네면 놀란 토끼눈이 되었다가, 질문을 던지면 ‘음’ 하며 3초 정도 눈을 감고 생각한 뒤 천천히 답했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할 때면 소리 내어 웃는 대신 가지런한 치아를 드러내며 꽤 오래 미소를 지었다.
순수 혹은 청순이란 단어는 남자를 설명하는 말로는 어색하지만 그에게는 꽤 어울리는 수식어였다.
<혼술남녀>가 종영한 지 한 달이 되어가지만 민진웅은 드라마의 여운을 좀더 오래 즐겨야 할 듯하다.
그도 그럴 것이 영화 <패션왕>과 <검은 사제들>, <동주> 등에서 비중을 차츰차츰 늘리며 성장해오다 <혼술남녀>를 통해 대중의 시선을 확실히 사로잡았기 때문이다.
극중 학원강사 민진웅의 코믹 캐릭터를 잘 살려낸 그의 연기가 큰 웃음과 감동을 안기며 배우 민진웅의 존재를 새삼 각인시킨 것이다.
“지금 생각해도 쑥스럽네요. 성대모사가 웃겼지만 비슷한 건 아니었어요. 이병헌 선배님 모사할 때부터 좋아하셔서, ‘뭣이 중헌디’로 눈을 뒤집고, 김래원 선배님 대사로 정점을 맞았죠. 사실 부담이 컸어요. 매주 두 사람씩 성대모사를 하고 나면, 다음 주엔 또 누가 나올까 걱정도 됐고요.
다행히 많이 좋아해주셔서 힘이 났죠.” 무엇보다 직장에선 한없이 밝고 명랑하던 ‘민쌤’이 홀로 아픈 어머니를 간호하다 떠나보내는 단짠단짠한 실상이 드러나며 극과 극을 넘나드는 민진웅의 연기와 존재감이 더욱 빛을 발했다.
“우리 모두 힘든 일이 있어도 밖에서는 감추면서 살잖아요. 저도 평소엔 그렇거든요. 개인적인 문제는 최대한 혼자 해결하려는 편이어서 극중 상황에 자연스럽게 몰입이 된 것 같아요.”
인생을 살며 누군가 한 번쯤 무언가에 미쳐 올인할 때가 있다. 민진웅에겐 바로 지금이 그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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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가 정말 좋아요. 제 일생일대 이토록 무언가에 빠져들었던 적이 없죠.”
고등학교 때 전교 1등을 할 정도로 성적이 좋았던 그는 법대에 입학했지만, 얼마 못 가 자신의 길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법대 들어가면 공부 좀 한 것 같잖아요. 성적에 맞춰 원서를 냈어요. 입학해서는 수업도 안 들으면서 헌법책은 옆구리에 끼고 다녔죠. 하지만 6주 만에 포기했어요. 이과 출신이라 한자를 읽지도 못했어요. 잘못된 선택이었죠.”
합격한 대학에 나가지도 않는 아들을 지켜보던 어머니가 뭐든 다양하게 경험해보라며 연기학원을 권했고, 그 길로 그는 연기라는 신세계에 매료됐다.
“테네시 윌리엄스의 <유리동물원>이라는 작품 중에서 엄청 화내는 장면을 연기해야 했어요. 다른 친구들은 쭈뼛쭈뼛하며 부끄러워하는데, 전 이왕 하는 거 쪽팔리긴 싫어서 막 화내고 소리를 질렀어요. 무대에서 내려왔더니 온몸이 땀에 푹 젖었더라고요. 긴장하면 땀을 굉장히 많이 흘리는데, 그때도 굉장한 긴장과 함께 에너지가 발산되면서 ‘아, 내가 연기를 좋아하게 됐구나’ 느꼈어요.” 이듬해엔 한예종에 합격했다. 그 후로 스물아홉까지는 연기에 ‘미쳐서’ 살았다.
사람들과 함께 땀 흘려가며 공연을 만들고, 관객들에게 선보이는 일련의 과정들을 그는 사랑했다.
“전 팀 작업을 좋아해요. 일정 기간 동안 여러 사람들이 오로지 한 작품을 위해 시간과 에너지를 모두 투자해 지지고 볶고 싸우고 화해하며 결과물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정말 즐거워요.
팀원들끼리 손발이 딱딱 맞을 때 느껴지는 카타르시스는 엄청나죠. 소름이 끼칠 정도로요.”
인생이란 긴 레이스에서 연기라는 힘든 종목을 선택했지만 그는 단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다.
해야 할 일, 잘하고 싶은 일이기 때문에. 대학 졸업이 가까워올 땐 답답하고 막막하기도 했다. 그럴 땐 여행을 다녀와 다시 마음을 다잡았다. 배우 아닌 스타를 꿈꾼 적은 없지만 내심 희망을 품기는 했다.
‘삼십대까지 공연으로 실력을 다지다보면 마흔 쯤 영화에도 출연할 기회가 오지 않을까’하는.
그러다 우연한 기회에 지금 회사에서 그의 공연을 봤고,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빨리 우리는 드라마와 영화에서 민진웅을 만날 수 있게 됐다.
일상의 민진웅은 꽤 수수하다. 배우로서 한 계단 한 계단 오르면 눈높이가 달라지고, 통장의 잔고가 찰수록 곁눈질을 한다지만 그에게는 아직 밥벌이가 과제다.
“친한 친구들에게 통장 잔고를 공개해요. 아직 큰돈을 모으진 못했죠. 좋은 작품에 나왔다고 제 삶이 금방 달라지는 건 아니니까요."
부모님과 함께 사는 그는 번 돈을 어머니께 다 드리고 술값, 담배값, 교통비를 타서 쓴다.
버스와 지하철을 주로 타고 다니며 택시비가 아까워 웬만하면 걷는다. “차가 필요할 땐 가족 차를 쓰죠. 2002년식 칼로스. 좋은 차 타면 물론 좋겠지만, 유지비가 많이 들어가잖아요. 술 마시고 홍대에서 잠원동 집까지 걸어온 적도 많아요. 맥주 한 캔 사서 이어폰 꽂고 노래 부르면서 걸으면 꽤 기분이 좋아요."
먹는 대로 살찌는 체형이라 운동은 꼬박꼬박하는 편이다.
헬스, 야구와 농구 등 남자들이 대부분 좋아하는 운동들이다.
또 하나 즐기는 건 혼술. “체중관리 차원에서 최대한 안 먹다가도 촬영이 끝나면 다음 날 일이 있어도 나에게 고생했다고 격려하는 의미로 편의점 앞에서 맥주 한잔 가볍게 마셔요. 그럼 기분전환이 돼요.
TV도 많이 봐요. 예능 프로그램 보면서 많이 웃고, 오전에는 해외스포츠도 찾아보죠. 아, 어제 <슈스케>를 못 봤네요. 이따 집에 가서 봐야겠다.”
2017년 새해 벽두엔 영화 <재심>과 <7년의 밤>이 개봉할 예정이다.
캐스팅 문의가 빗발치고 있는 잘나가는 신인배우에게 앞으로의 꿈을 물었다.
“눈치 보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나 스스로 믿음을 갖고 후회하지 않는 배우요.
키가 커서인지 어렸을 때부터 말 안 하고 가만히 있으면 화났냐고들 물었어요.
진심이 아니었는데 싸우게 되곤 했죠. 오해를 받을까봐 늘 두려웠어요. 연기할 때도 그래요. 솔직하고 편안하고 담백하고 싶어요.
제 진심이 잘 전달됐으면 해요. 그게 신인배우로서 지켜야 할 마음가짐인 것 같아요.”

스타일리스트 시주희 헤어&메이크업 박미듬(차홍 아르더) 어시스턴트 김혜원



에디터:이영민 | 월호:2016년 12월호 | 업데이트:2016-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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