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이 나를 철들게 했다

엄마 강주은과 아들 유진이가 함께한 몇 컷의 사진은 행복한 가족을 증명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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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키 새틴 톱 자라, 골드 네크리스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천하의 최민수를 이기고, 바이크와 레이싱을 즐기는 여자.
하지만 아이들에겐 한없이 부드럽고 사랑스러운 엄마, 강주은이 민낯에 바지와 스웨터 차림으로 걸어와 두손 두발을 가지런히 모으고 인사를 건넨다.
마치 한국에서는 이렇게 인사해야 해요 하듯이. 낯선 촬영장 분위기에 당황한 유진에게는 “벤자민, 거기 소파에 앉아서 좀 기다려” 하고 부드럽지만 단호하게 말한다.
“유진이는 덩치만 컸지 아기예요. 순진하고 유순하죠. 아직은 엄마 말을 잘 듣는 아들이에요.”
한국말보단 영어가 더 편한 유진이는 처음엔 수줍은 듯하더니 역시나 엄마아빠의 끼가 어디 가겠냐 싶을 만큼 카메라에 금세 적응하는 모습이었다.
<엄마는 뭐길래>를 통해 강주은은 ‘부드러운 리더십’, ‘온화한 카리스마’의 전형을 보여준다.
한국에서 아들 둘 키우는 엄마라면 매일 목소리 높이며 전쟁 같은 일상을 보내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그녀는 두 아들과 친구처럼 다정하게 지낸다.
꼭 야단을 쳐야 할 때도 목소리를 높이기보단 단호하게 자신의 의견을 말하고 조언한다. ‘엄하게’가 아니라 ‘친하게’가 그녀의 교육철학이다.
“잘 지켜봐야 해요. 개입하면 안 되죠. 아이들이 제 소유라고 생각 안 해요. 지도할 뿐이에요. 아이들이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환경과 조건을 만들어주고요. 대부분 ‘부모니까’라는 생각에 아이들에게 무조건 ‘안 돼’ 하고 말하잖아요. 전 그렇게 하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제가 실수했을 땐 금방 인정하고요. 엄마아빠니까 무조건 옳다고 고집하면 부모자식 사이가 아주 위험해져요.”
외국인학교에 다니는 유진이는 올해 열여섯 살. 이제 성적에도 조금 민감해질 나이가 되었지만 그녀는 여느 부모와는 좀 다르다.
열심히 노력했는데도 F가 나오면 이렇게 말한다. “이건 엄마의 점수가 아니라 유진이 점수야. 네가 괜찮다면 계속 가져가도 돼. 엄마아빠 도움이 필요하면 도울게. 하지만 네가 할 수 있다면 괜찮아.”
아이들이 싫어하는 것은 억지로 강요하지 않고 선택을 존중하려 노력한다. 성적이 나쁘다고 아이를 이 학원 저 학원으로 내돌리는 것은 절대 하고 싶지 않다.
학원에 가는 순간 아이답게 살 수 없을 것만 같아서다. 아직은 멋대로 생각하고 자유롭게 행동하고 싶을 나이에 어딘가에 속박되어 책만 들여다보는 것은 아이가 누릴 일상이라 생각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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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환경과 조건을 만들어주고요.
대부분 ‘부모니까’라는 생각에 아이들에게 무조건 ‘안 돼’ 하고 말하잖아요. 전 그렇게 하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제가 실수했을 땐 금방 인정하고요. 엄마아빠니까 무조건 옳다고 고집하면 부모자식 사이가 아주 위험해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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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교만했어요. 제 사랑이 남편을 바꾼 것이 아니라 남편이 원래 순수한 사랑 덩어리였어요.
자기방어를 위해 다 가리고 다녔을 뿐이죠. 사람이 변한 게 아니라, 원래 지닌 순수한 모습을 천천히 보여준 거였어요.


그녀도 학원을 안 다녔을뿐더러 큰아들 유성이도 사교육 없이 세계 20위권 안에 드는 명문 토론토대학교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입학 당시 유성이는 세계 유수 대학 몇 군데에 동시 합격했는데, 스스로 캐나다에 있는 학교를 골랐다.
외로운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곁에 있고 싶다면서. 부부는 좀 놀랐지만 아이의 선택을 존중했다.
“대학교 3학년 나이인데, 지금 한 학기를 휴학하고 필름 아카데미에 다니고 있어요. 연기와 영화제작을 배우고 싶대요. 연기자 집안이니 연기를 한 번쯤 경험해봐야 한다네요.”
강주은은 가식이 없다. 말을 둘러댈 줄 모르고 진심으로 웃고 운다. 결혼생활을 다 까발렸으니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지금의 행복한 시간을 누리기까지 참 오래 참고 많이 노력했다.
최민수와 그녀가 처음 만난 건 22년 전. 캐나다 웨스턴온타리오대학에서 생물학을 전공하며 치의학 전문대학원 진학을 준비하던 그녀는 커리어에 한 줄을 추가할 겸 미스코리아 대회에 나갔고, 그 대회에 최민수가 초대손님으로 와서 노래를 불렀다.
당시만 해도 그녀는 최민수가 누군지도 몰랐는데, 다음 날 방송국 견학을 가서 드라마 <엄마의 바다>를 촬영 중이던 그를 다시 만났다.
그리고 만난 지 3시간 만에 청혼을 받았다.
“스케줄이 바쁠 때였는데 주말마다 캐나다로 왔어요. 저희 부모님한테 애교를 부리면서 정성을 쏟는데, 그 모습을 보고 결혼을 결심했죠.”
그런데 마냥 행복할 것만 같았던 결혼생활은 시작부터 삐걱댔다. 낯선 한국땅에서 서툰 한국어로 소통하는 것부터 벅찼다.
외동딸로 부모님의 사랑만 받으며 지내다 갑자기 남편에게서 밥이 맛없단 얘길 들었을 땐 캐나다에 있는 집으로 뛰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가장 어려운 것은 남편과의 커뮤니케이션이었다.
“남편은, 남자가 말이 많으면 가장의 권위가 떨어지고 여자도 말이 많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강주은이란 여자를 행복하게 해주고 싶은데 방법을 잘 몰랐죠.”
두 사람의 마찰은 무엇보다 가족에 대한 생각 차이에서 기인했다. 최민수는 태어난 다음 해에 부모님이 이혼을 해 부모님의 사랑을 온전히 받아본 적 없는 남자.
그가 그리는 완벽한 가정은, 아버지는 소파에 근엄하게 앉아 있고 어머니는 앞치마를 입고 요리하는 모습이었다.
반면 강주은은 화목한 가정에서 부모님이 늘 대화하는 모습을 보고 자랐으니 부딪칠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하면 남편과 대화를 잘하며 ‘정상적인’ 가정을 일굴 수 있을까 고민하던 그녀가 생각한 것이 바로 만화.
한국말이 서툴렀기 때문에 속마음을 만화로 그려 매일매일 남편에게 보여줬고, 최민수는 서서히 달라졌다.
“세상에 믿을 사람이 없었던 남편은 늘 믿고 의지할 만한 형을 찾아다녔는데, 그 형의 모습을 저에게서 찾은 것 같아요. 전 남편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아 노력했고요.”
강주은 역시 23년 동안 끊임없이 자신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내가 지금까지 받아온 사랑을 오롯이 내주겠다’는 마음으로 남편을 사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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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제가 최민수를 휘어잡는다고 하지만 글쎄요, 우리는 천생연분인 것 같아요.
나는 어쩌다 이렇게 독특한 남자를 만나 이런 결혼생활을 하게 됐나 싶었는데, 알고보니 제게도 이 남자와 살 만한 재료들이 많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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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주은의 블랙 원피스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큐빅 이어링 스와로브스키, 실버 링스톤헨지, 진주 브레이슬릿은 엠쥬.


새틴 패치 재킷과 팬츠는 자라, 이어링과 네크리스는 스톤헨지, 실버 블랙 링은 스와로브스키.

그래서 물었다. “그런 지고지순한 사랑으로 최민수씨가 변한 건가요?”
강주은은 “노” 하며 가슴을 친다.
“제가 교만했어요. 제 사랑이 남편을 바꾼 것이 아니라 남편이 원래 순수한 사랑 덩어리였어요. 자기방어를 위해 다 가리고 다녔을 뿐이죠. 사람이 변한 게 아니라, 원래 지닌 순수한 모습을 천천히 보여준 거였어요. 내 사랑이 남편의 딱딱한 마음의 벽을 뚫은 거죠. 원래 이토록 부드러운 남자였는데 말이죠!”
남자는 여자 하기 나름이라는 말도 있지만, 강주은은 남편이 자신의 본모습을 찾은 것이라고 말한다.
세상사람들은 최민수 하면 터프가이라고 말하지만, 더없이 온순하고 순수한 그의 진짜 모습을 그녀는 알고 있었다. 드라마 <사랑이 뭐길래> 속 ‘대발이’가 최민수의 본래 모습과 비슷하다고.
“많은 사람들이 제가 최민수를 휘어잡는다고 하지만 글쎄요, 우리는 천생연분인 것 같아요. 제 눈에는 처음부터 이 남자의 속내가 보였거든요. 왜 그런 말과 행동을 하는지 자연스레 해석이 되더라고요. 결혼이라는 것 자체가 힘든데 나는 어쩌다 이렇게 독특한 남자를 만나 이런 결혼생활을 하게 됐나 싶었는데, 알고보니 제게도 이 남자와 살 만한 재료들이 많더라고요.”
결혼하고 10년쯤 되던 해부터 강주은은 주한 캐나다상공회의소 이사회 부의장, 주한 미국상공회의소 교육위원회 공동의장 등을 맡으며 활발한 민간외교활동을 해왔다.
몇달 전 12년간 몸담고 있던 외국인학교 부총감 자리에서 물러난 후부터는 ‘관계소통전문가’로 활동하고 있다. 얼마 전엔 ‘결혼이 나를 철들게 했다’는 주제로 강연을 했다.
강연 마지막에 그녀가 한 말은 “결혼 후 여러 일을 겪었지만, 다시 태어나도 이 사람과 결혼하겠다. 영광이다”였다.
자신만 바라봐주는 순수한 남자의 사랑을 이제야 맘껏 누리고 산다는 그녀. 예전에는 ‘최민수의 아내’로 불리는 게 싫을 때도 있었지만, 이젠 그 자리가 더없이 고맙다.
남편이 아니면 지금의 자신을 발견할 수 없었다는 그녀는 ‘영광’이라는 말을 꽤 여러 번 언급했다. “저희 부부는 ‘미녀와 야수’예요. 제가 이토록 열렬히 사랑하니 야수였던 남편이 왕자가 되었잖아요.
남편이 제게 항상 하는 얘기가 있어요. “나는 흙, 당신은 진주야. 23년 전으로 돌아가 지금 나의 정신으로 주은이를 사랑해주고 싶다.”
남편은 지난 시간을 아까워하지만, 지금 전 더할 나위 없이 만족하고 있어요. 아주 감사하죠. 전 다 가진 행복한 여자니까요.”

에디터:이영민 | 월호:2016년 12월호 | 업데이트:2016-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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