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교익의 밥그릇 철학

맛 칼럼니스트 황교익이 우리 밥상문화에 새로운 질문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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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 맛에 관련된 일만 하시는 줄 알았는데 서울공예박람회 총감독이라니 의외입니다
‘맛 칼럼니스트’라는 직업은 음식에만 관심을 두는 직업이 아니에요.
음식은 소재일 뿐, 그 음식을 만들고, 먹고, 재료를 확보하는 모든 과정에서 의미를 찾는 것이 제 일이죠.
공예는 예술과는 달라요. 우리나라 공예품이라고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고려청자, 조선백자를 떠올리지만 청자나 백자는 현재 한국인의 삶에서는 의미가 희박해요.
유물일 뿐 실제로 사용되진 않으니까요.
그렇다면 현재까지도 사용되며 우리 삶과 깊이 연관돼 있는 공예품은 무엇일까 생각해봤죠.
답은 바로 밥그릇이에요. 우리는 삼시세끼 밥을 먹고, 그때마다 밥그릇과 마주치죠.
이처럼 친숙한 공예품인 밥그릇의 현실이 어떤지 보여주고 싶었어요.
우리나라 밥그릇의 현실, 어떤가요
한국인이 가장 많이 접하는 밥그릇은 ‘스뎅’, 즉 스테인리스예요.
집에서는 다르겠지만 식당에서는 가장 흔하게 만나는 밥그릇이죠.
스테인리스 밥그릇은 1970년대 식량 사정이 넉넉지 못하던 시절에
정부가 쌀 소비를 줄이기 위해 밥공기의 규격을 지름 11cm, 높이 6cm로 정하면서 등장한 그릇이에요.
국가가 밥그릇의 크기까지 통제해야 했던 시절의 아픈 유산을 지금까지 그대로 이어가고 있는 셈이죠.
집에서 쓰고 있는 밥그릇의 크기도 그리 다르지 않아요.
밥을 주식으로 하는 민족들에게는 저마다 전통적인 밥그릇이 있어요. 인사동에 가면 외국 관광객들에게 파는 기념품 중에 바로 이 '스뎅' 밥그릇이 있는데, 그 위에 태극마크를 붙이고, ‘KOREA’라고 써놨어요. 고려청자와 조선백자의 나라라고 자랑하면서 현실은 부끄러운 수준이죠.
그럼 우리나라 전통 밥그릇은 무엇인가요
흔히 놋그릇을 떠올리지만 그건 양반가에서나 썼죠.
우리식 밥상을 구현하기 위해 일부 식당에서는 도자기나 유기를 사용하는 등 노력을 하고 있지만 그것 역시 좋게만 보이진 않아요.
백자는 백자끼리, 유기는 유기끼리 통일한 것은 아름답다고 볼 수 없어요.
변화가 있어야 하거든요. 밥상에 오른 음식만 해도 찬 것, 따뜻한 것이 있고 물기가 있는 것, 없는 것도 있죠, 또 음식의 색깔에 따라서도 그릇에 어마어마하게 다양한 변주가 생겨요.
음식의 물성에 따라서 그릇 소재가 달라져야 하는 거죠.
이렇게 각각의 것들이 아름답게 조화를 이뤄야 하는데 그 작업이 생각보다 복잡해요.
유기, 목기, 도자기 등 모든 공예품을 흩어놓고 다시 조합을 해야 하니까요.
이런 힘든 작업을 외국에서는 다 해요. 우리는 너무 안이하게 식탁을 구성하고 있는 것이죠.
통일감을 선호하기 때문 아닐까요
문명의 선진과 미개를 나누는 키워드는 섬세함이에요.
얼마만큼 섬세하게 보고, 나눠서 쓰느냐죠. 우리는 섬세함이 아직 부족해요.
선진의 반대말은 미개잖아요.
전 그래서 대놓고 미개하다고 말해요.
그릇만 봐도 우리 수준을 알 수 있죠.
그 미개함을 드러내 보여주는게 이번 박람회의 목적이에요.
박람회는 보통 좋은 것을 널리 알리는 것을 목적으로 하지만 이번 박람회처럼 ‘왜 우리가 이런 밥그릇에 밥을 먹고 있지?’ 하고 성찰하게 만드는 것도 의미 있는 작업이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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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판도 많이 쓰죠
학교나 군대에서요.
식판은 판 위에 밥, 국, 반찬을 담으라고 만든 것이 아니라 그릇을 올리기 위해 만든 도구예요.
그런데 우리는 식판 위에 바로 밥을 담고 반찬을 담잖아요.
인간으로서의 품격을 훼손하는 행위예요.
이런 현실이 공예 시장의 확장을 막는 것은 차치하고, 인간으로서의 품격을 지키면서 밥 한끼를 먹는 것도 방해한다고 생각해요.
밥먹을 때만큼은 비싸지 않아도 좋으니 아름다운 그릇에 음식을 담아 먹는 것을 일상화했으면 좋겠어요.
공예품의 역할은 일상을 아름답게 하는 것이니까요.
선생님은 어떤 밥그릇을 쓰시나요
종류가 굉장히 다양해요. 여행 가서 몇 점씩 사오기도 하고 도예 하는 후배가 취향에 맞게 만들어준 것도 있고요.
오래 써서 귀퉁이가 깨진 것들도 있어요.
도자기는 변하는 게 아니잖아요.
수백 년, 수천 년도 쓸 수 있어요.
깨지고, 금 가는 것 자체가 역사이자 삶의 흔적이에요.
코렐처럼 안 깨지는 도자기를 선호하는 주부들도 있지만 도자기는 원래 깨지는 거예요.
깨졌을 때 안타까운 마음도 추억이 될 수 있죠.
예전엔 도자기 수선하는 사람이 거리에 돌아다녔어요.
깨지면 붙여서 쓰는 것이야말로 삶을 고귀하게 만드는 행위라고 생각해요.
결국 어떤 그릇을 마련해야 할까요
집에 그릇이 많아야 해요.
세트를 많이 가지고 있을 필요는 없고요.
그릇을 하나하나 사 모으는 재미가 얼마나 큰데요.
짝을 맞출 필요 없이 접시 하나, 국그릇 하나씩 마음에 들면 사는 거죠.
4인 가족이라고 밥상에 4인 세트가 있을 필요가 있나요.
다 아귀가 맞아야 하고, 그래야만 편안한 건 군사문화의 유산이에요.
개성 없이 주어진 틀 안에서만 생각하도록 교육을 받아왔기 때문이에요.
세트가 없는 집은 아마 없을걸요 왜 그렇게 됐는지 생각해봐야 해요.
1970년대에 우리나라 도자기 회사들이 혼수세트를 만들기 시작했어요.
디자인은 물론 외국에서 가져왔죠.
혼수가 보편적인 결혼 풍습으로 자리잡으면서 결혼할 때는 으레 그릇 세트를 혼수로 가져갔죠.
그런 그릇 세트들이 아마 지금도 장롱 위에 그대로 있는 집이 많을걸요.
공예품은 일상에서 자주 써야 의미가 있어요.
특히 그릇은 10만원짜리든 1만원짜리든 사용해야 의미가 있죠.
쓰다가 깨져서 10만원이 날아가면 아깝지만 그 자체로도 의미가 있어요.
깨지는 그 순간도 추억이니까요.
장롱에 모셔둔다고 값비싼 골동품이 되는 것도 아니고요.
공예품에 대한 우리의 생각이 너무 경직돼 있어요.
공예품은 귀중품, 예술품이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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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공예박람회의 마무리는 밥그릇 파티. 참석자는 공예박람회에 참가한 공예가와 기획, 자문을 맡은 인사들이었다.
이날 파티의 스타일링은 회화를 전공하고, <모던보이>, <타워>, <암살>, <아가씨> 등의 영화에서 공간 연출을 한 식, 공간 연출자 김민지 대표가 맡았다.
먼저 공예박람회에 출품한 작가의 밥그릇 100개에 10가지의 밥을 담았다.
오곡밥, 모둠콩밥, 찰밥, 현미밥, 모둠버섯밥, 시래기밥, 꽁보리밥, 밤밥, 간장버터밥, 흰밥 등. 그리고 각 밥마다 어울리는 반찬을 곁들여 우리식 밥상을 선보였다.
흰쌀밥에는 토하젓·쪽파겉절이·감태·고추장아찌·장조림·동치미를, 찰밥에는 오징어젓갈·장조림·깻잎무장아찌·구운 김·갓물김치를 곁들이는 식. 밥상에 따라 식음주도 다르게 매칭했다.
솔송주·청명주·오미자막걸리·은자골탁배기·로아·금정산성막걸리·복순도가·동몽·화요·우렁이 쌀 손막걸리 등 곁들인 우리 술의 종류도 다채로웠다.

에디터:류창희 | 월호:2016년 11월호 | 업데이트:2016-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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