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이 뭐 별건가

이래라 저래라 하고 싶지 않은 김창완 아저씨의 오프닝 멘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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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를 앞두고 자료를 뒤지다가 그가 몇년 전 서울대에서 했던 강의 내용을 봤다. 자신이 젊어 보이는 비결을 묻는 김창완.
‘음악’, ‘젊은 후배들과의 작업’ 등등 학생들이 답을 내놓을 때마다 고개를 가로젓는다. “쭈글쭈글한 입 모양을 보완하는 틀니와 빈 머리숱을 감추는 가발이 비결이야.” 헉! 가식이 ‘1’도 없는 대답이다. 인터뷰 내내 그는 특유의 느릿한 톤으로 생의 까칠한 정곡을 이야기했다.
“커피 사왔어? 나 커피 잘 내리는데, 아쉽다!”
아침 9시부터 11시까지 이어지는 생방송을 끝낸 김창완이 부스스한 머리로 소년 같은 미소를 지으며 스튜디오 문을 열고 나왔다. 반바지에 트레이닝복, 딱 편의점에서 만난 옆집 아저씨 차림이다. 그러고보니 <아름다운 이 아침 김창완입니다>의 윤의준 PD도 “아저씨, 내일 또 봐요” 하더니 자리를 뜨고, 20년째 곁을 지키고 있는 매니저도 “아저씨, 머리 좀 빗으세요” 한다. “내 나이 스물넷부터 아저씨 소리 들었어. 지금부터 나한테 아저씨라고 불러!” 그래서 그를 ‘선생님’이 아니라 ‘아저씨’라 부르게 됐다.

이곳에 오는 길에 <아침창>을 들었어요. 아이들의 사연이 인상적이었어요. 아저씨 노래나 글에도 아이들 이야기가 많이 나오잖아요. 때론 어른들이 아이들에게서 많은 걸 배우죠
물론이에요. 아까 방송에서는 바퀴벌레를 키우고 싶다는 아이 사연을 소개했어요. 엄마가 징그럽다고 싫다니까 아이가 그러죠. “엄마, 바퀴벌레 마음 좀 들여다봐.” 여운이 남더라고요. 바퀴벌레 마음이라니, 우린 삐친 남편이나 아내 마음 하나 못 알아차리는데 말이에요. 아이는 어른보다 훨씬 큰 세상을 볼 수 있어요.
그러니까 아이들에게서 배우지.

아침 라디오를 한 지 16년이 됐어요. 주 청취자들이 주부인데, 요즘 주부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난 일부러 ‘주부’라고 대상을 규정해서 생각하지는 않아요. 주부들도 ‘난 주부니까 이런 말은 들어야겠지’ 하는 갇힌 마음에서 벗어나야 하니까요. 설혹 그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생각나더라도 그것에서 벗어나 다른 이야기를 하고 싶으니까, 내가 얘기할 게 별로 없어요. 게다가 요즘엔 남자 주부도 많잖아요. 은퇴한 할아버지도, 집에 있는 취준생도 주부거든요. 변화하는 사회 속에서 주부의 개념도 변하는 거죠. 그 사람들을 어떻게 이해하고 접근하는가가 더 중요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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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이 넘는 시간동안 김창완은 <아침창> 오프닝 멘트를 육필로 적어왔다. 라면 상자 하나를 꽉 채운 그의 원고 중에서 사진은 일부. 주옥같은 글을 모아 이번에 《안녕, 나의 모든 하루》(박하)를 펴냈다.


라디오 오프닝 멘트를 직접 쓰는 것으로 유명한데, 그 멘트들을 모아 이번에 《안녕, 나의 모든 하루》라는 책을 내셨죠. 오프닝 멘트를 쓸 때 특별히 염두에 두는 게 있나요
(한참 생각한 뒤) 그냥 이 멘트가 말을 위한 말, 시간 때우기용 이야기가 아닐까 신경 쓰죠. 내 나름의 필터로 거르는 편인데, 내 심의에 안 걸리길 바랄 뿐이에요.

계절, 사랑, 친구, 벌레 등 평범한 일상에 대한 아저씨만의 해석이 따뜻해요. 숱한 일상 속에서 어떤 것이 아저씨 마음을 가장 잡아끄나요
모르겠어요. 어떤 것이 나를 끌어당긴다기보단 그냥 내 주장을 하는 거예요. 난 어떤 것에든 갇히기 싫어하는 사람이거든. 사실 무엇이 매력적인가에 대해 쉽게 말할 수 없어요. 하루아침에 보석을 골라낼 수 없으니까. 다만 때가 낀 것은 아닌가, 낡은 것은 아닌가 늘 우려하죠.

방송 시작 5분 전 오프닝 멘트를 또박또박 적는다고 들었어요. 아주 급할 시점 아닌가요.
급한 마음이 글에는 안 담기죠. 뭉뚱그린 생각을 대충 메모하는 게 아니라 토씨 하나까지 정해놓고 멘트를 쓴 다음 그대로 읽어요. 간혹 방송하다 토씨가 이상해 그 순간 고치면 오프닝에서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제대로 전달이 안 될 때가 많아요. 이 정도 이야기를 하면 되겠다 싶어서 주제만 잡아서 이야기하면, 그 짧은 순간 내가 하고픈 말을 정확히 전달할 수가 없어요. 중언부언하기 쉽죠. 그래서 어떻게 쓰냐면, 그냥 쓰는 거지 뭐. 하하하.

책을 읽고 나서 마음이 든든해진달까요. 가슴을 울리는 글귀가 많았어요. 힘든 일이 있는 분들에게는 큰 위로가 될 것 같은데
노! 싫어요.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길 바라고 쓴 게 아니니까요. 자다가 일어났는데 아침부터 이래라 저래라, 힘내라 기운내라 그런 소리 자체가 괴롭지 않겠어요? 이 아침은 많은 사람이 맞는 아침이자 김창완의 아침이죠. 물론 여러 사람이 공감할 수도 있고 못할 수도 있어요. 못하면 나의 넋두리로 끝날 것이고, 공감하면 그대로 또 좋은 거고.

아침 라디오 프로그램을 16년이나 한 건 그만큼 청취자들 사랑을 받았다는 거겠죠. 다른 말로는 아저씨가 대중과도 잘 소통한다는 거고요. 그런데 SNS는 안 하시던데요
난 SNS가 오히려 소통의 장애라고 생각해요. 한번 생각해 봐요. SNS로 내 마음을 감추고 있지는 않은지. 그곳에 진심을 털어내는 사람이 있을까요? 난 아니라고 생각해.

그럼 진정한 소통은 뭘까요
진짜 소통은 얼굴 마주보고 격의 없이 이야기를 나눈다든지, 엄마아빠를 이해한다든지, 가정의 평화를 이룩한다든지, 혹은 친구 사이에 오해를 푼다든지, 국가 간 신뢰가 쌓인다든지 뭐 그런 거라고 생각해요. 우리 어렸을 땐 ‘염화시중의 미소’가 소통의 근본이라 생각했어요. 현대인들은 정보가 많이 왔다갔다하면 소통이 된다고 생각하는데, 나도 모르는 친구가 몇 명인지가 뭐가 중요해? 진심은 차단됐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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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이나 SNS에도 이른바 ‘좋은 글’이 있잖아요.
좋은 글이 있대도 난 많이 읽지 않아요. 《중용》이나 《도덕경》에서는 좋은 걸 좋다고 얘기하지 말랬어요. 그럼 ‘좋다는’ 경향이 생기고 나중엔 그 방향으로 행동하려 하기 때문에 언젠간 독이 된다는 거죠. 황병철씨의 《아름다움의 구원》을 한번 읽어봐요. 현대인의 긍정성과 ‘좋아요’에 길든 것에 반하는 부정적인 것, ‘이게 혹시 나쁜 것이 아닐까?’ 하는 반추를 놓치지 않는 게 필요해요.

아저씨는 늘 한결같아요. 무대에서 뛰고, 아이 같은 미소를 짓고, 젊은 뮤지션들과 작업도 많이 하죠. 많은 후배들이 인생의 멘토 또는 가요계의 살아 있는 전설이라 이야기하는데 부담스럽진 않으세요
소통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나는 그들과 음악으로 진정 소통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요즘 사람들은 소통을 갈구하면서 소통의 중요성을 자꾸 말해요. 그만큼 소통이 안 되기 때문이죠. 내 아버지는 오래전에 돌아가셨는데, 해가 거듭될수록 아버지를 더 이해하게 되고 소통하는 느낌이에요. 아버지 생전에는 대화한 적이 거의 없어요. 하지만 아버지가 돌아가고 난 후에야 알았지. 아버지의 말 없음을 이제야 이해했고, 그 소통의 의미를 알게 된 거죠. 말을 안 해도 남편의 뜻을 알고 말 안 해도 아내의 불만을 아는 게 소통이지, 꼭 말로 해야 하나?

요즘 아저씨의 화두가 혹시 소통인가요
아니, 소통이란 마이클 샌델의 ‘정의’처럼 오랜 시간 연구가 필요한 문제 같아요. 요즘 내 화두는 ‘도대체 언제쯤 기타를 잘 칠까’예요. 요새 꾸준히 기타를 치는데, 개미 눈곱만큼 느는 것 같아. 하하하.

언제 가장 행복한가요
무대에 설 때죠. 이제 가을이 왔으니 또 행복하고. 그런 의미에서 우리 진정한 소통을 하러 나갑시다. 한잔하러!
김창완은 방송국에서 나와 41타워에 있는 이탤리언 레스토랑에 자리를 잡았다. 그러고는 에스쿠도 로호 한 병을 시켜 손수 디캔딩을 선보이며 맛있게 음미했다. 식사 후엔 입가심 맥주를 주문했다. 그때까지도 밖은 아직 쨍쨍한 한낮이었다. 기자는 빽빽이 적어간 질문지를 반도 못 풀어내고는 그대로 접었다. “소통이 별건가? 이렇게 진심으로 즐기는 거지!” 생각해보니 그가 진짜 하고 싶은 말은 이 말 한마디였던 것 같다.




에디터:이영민 | 월호:2016년 9월호 | 업데이트:2016-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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